"이태임이 엄청 심한 욕을 했다던데?"
최근 방송 프로그램 녹화 도중 여배우 이태임이 여가수 예원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는 '받은 글'이 모바일메신저 카카오톡으로 파다하게 퍼졌다. 메시지 제목 '받은 글'이란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받은 소식'이란 의미다. 진위 책임은 내게 없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녹화한 영상이 지난 27일 공개됐다. 영상에 '입에 담지 못할' 욕은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씨에게 동정론이 쏟아졌다.
그렇다면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담은 ‘받은 글’은 도대체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카카오톡에 퍼지는 ‘받은 글’은 일명 ‘찌라시’의 온라인 버전이다. 흔히 ‘증권가 찌라시’로 알려진 정보지는 크게 둘로 나뉜다. 정기간행물로 등록해 돈을 지불한 이들에게 인쇄물이나 문서파일 형태로 제공하는 ‘사설정보지’와 ‘받은 글’이란 제목을 달고 카카오톡으로 나도는 토막글.
문서파일의 경우 발간 주체가 있고 월 50만∼100만원의 비용을 내야 하기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졌다. 또 ‘시중에 유포할 경우 추적이 가능하다’ ‘회원이 정보지 내용을 유포해 제작자에게 피해를 입힐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등의 조건이 붙어 있어 확산 범위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받은 글’은 상황이 다르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받은 글’에 다른 내용이 첨부돼 돌기도 한다. 직장인 박모(27·여)씨는 최근 ‘단톡방’(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여자 연예인 남편의 실상’이란 글을 받았다.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다른 친구가 같은 제목의 글을 보내줬는데 내용이 달랐다. 처음 받은 글 뒤에 또 다른 연예인들 이야기가 첨부돼 있었다. 박씨는 “누가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거나 황당한 내용을 적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누가 쓴 것인지조차 불분명한 ‘받은 글’은 연예인 뒷얘기를 넘어 기업인 정치인 등의 각종 의혹과 사건사고로 소재를 점차 넓혀 가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직장인 전모(27·여)씨가 속한 단톡방에는 최근 정치인 관련 내용이 많이 올라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써 물밑 ‘작전’이 시작된 셈이다. 전씨는 “‘새누리당’ ‘○○그룹’ 등의 단어가 보여 어디서 받았는지 물어보면 ‘남자친구를 통해 받거나 다른 단체방에 올라온 내용을 복사해왔다’고 한다”며 “뭔가 고급 정보인거 같아 나도 다른 사람들과 바로 공유하곤 한다”고 말했다.
‘받은 글’의 전파력은 기존 정보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스마트폰의 특성상 몇 번의 조작만으로 글을 간단히 복사해 전달할 수 있어서다. 단톡방을 몇 번만 거쳐도 순식간에 수천명에게 내용이 전파된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도 바로잡기란 불가능하고, 최초 유포자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다.
한 기업의 정보담당자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정보 글이 날아오고, 나 또한 이를 수많은 사람에게 보내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그는 ‘만에 하나’를 위해 추적이 불가능한 텔레그램 메신저를 사용한다고 전했다.
기존 사설정보지의 영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최근에는 A정보지가 홈페이지 운영을 중단하고 발행을 포기했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모바일 시대에선 개개인이 ‘정보 유포자’ 역할을 한다. 진위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다루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기획] ‘받은 글’ ‘뱉은 글’… 하루 수십 번 퍼지는 스마트폰 속 ‘받은 글’ 살펴보니
입력 2015-03-30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