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심장병·뇌출혈도 그녀의 선교 비전 막지 못했다… 이광순 주안대학원대학교 전 총장 이야기

입력 2015-03-30 02:04 수정 2015-03-30 17:59
오로지 세계선교 만을 위해 평생을 달려온 이광순 전 주안대학원대학교 총장은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사람은 자기를 버려야 한다”며 “속은 비었지만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는 대나무 같은 선교사가 될 것”을 강조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소녀는 고향 경주에서 7세 때부터 새벽기도를 나갔다. 10세 되던 해, 세계선교의 비전을 품게 된다. 그러면서 신기한 체험을 한다. 자신의 다가올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간 것이다. 소녀는 ‘나의 장래’라는 제목으로 인생계획표를 작성한다. 그대로 실행했다. 결혼도 잊었다. 말기암과 심장병, 뇌출혈도 비전을 막지 못했다. 1985년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여성 최초로 박사(Ph.D.) 학위를 받고 장로회신학대(장신대) 선교학 교수, 주안대학원대학교 총장을 마칠 때까지 비전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이광순(69) 전 총장 얘기다.

지난 23일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만난 이 전 총장은 올 1월 18일 뇌출혈로 입원한 경험을 들려줬다. 여전도주일 설교를 마치기 직전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던 그는 뇌동맥 파열로 인한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환자 30%는 이동 중에, 30%는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 질병임에도 그는 수술을 받고 일주일 만에 완쾌됐다. 의사들은 기적이라 했다. 그는 뇌출혈 이외에도 육체의 가시가 있다. 24년 전 첫 심장마비를 겪은 뒤 줄곧 심장박동기를 달고 생활했고, 말기암 수술을 받고서도 일어났다.

이 전 총장은 “하나님이 이번에도 살려주신 것은 열 살 때 받았던 선교 비전을 끝까지 이루라는 사명이 아닌가 싶다. 두렵고 떨린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이 진짜 비전(vision)을 주신다면 ‘프리비전(prevision·선견)’과 ‘프로비전(provision·공급)’을 주신다. 사람은 그저 ‘예’ 하며 따라가면 된다.

이 전 총장의 인생 역정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는 삶이었다. 84년 미국 유학을 마치면서 그에겐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선교사 500명을 훈련시켜 파송하고 신학교에 선교학과를 설치한다. 총회(예장 통합)에서 여성 안수를 통과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10년 만에 모두 성취됐다. 세계선교훈련원을 세워 500여명의 선교사를 훈련시켰고 장신대에 선교학과를 만들었다. 여성 안수는 94년 총회가 결의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2004년부터 선교전문대학원 설립을 타진했다. 선교 현지의 야전사령관 배출을 위한 선교 사관학교였다. 2011년 개교한 주안대학원대학교는 그렇게 시작됐다. 학교는 선교학 박사 배출이 최우선 목표였다. “교수 선교사 중에는 박사 학위가 없어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박사 학위가 있으면 공산권이나 이슬람권에서도 인정합니다. 짱짱한 실력을 갖춘 선교사를 양성하자는 게 취지였어요.”

주안대학원대학교는 그동안 55명의 석·박사를 배출했고 그중 9명이 선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생 중 40여명이 해외 선교사였고, 20년 넘게 활동한 시니어 선교사도 13명이나 됐다.

이 전 총장은 사람 중심의 선교를 역설해왔다. 돈이나 건물을 앞세운 선교는 반대했다. 사람을 키우면 그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집짓고 예배당 지어주지 않았잖아요. 선교사들은 현지인에게 복음의 비전을 심어주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는 2010년부터 ‘transnational(초국가적)’이란 말을 자주 써왔다. 당시 ‘TASU(Transnational Association School and University)’라는 네트워크를 구상하고 선교사를 후원하는 ‘라이트미션’도 설립했다. TASU는 초국가적으로 신학교나 성경학교를 연결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선교와 훈련, 지도자 배출을 돕자는 것이다.

이 전 총장은 신학계에서 맹렬한 여성 학자로 통했다. 선교학계 발전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아 백방으로 뛰었다. 2010년 에든버러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5000쪽에 달하는 에든버러대회 연구총서를 번역, 출간했다. 국제로잔복음화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지금은 한국로잔위원회 의장과 아시아로잔위원회 부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사람은 자기를 버려야 한다”며 대나무 얘기를 들려줬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었어요. 꽉 찬 나무는 부러집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속이 비어 부러지지 않습니다. 기울어지고 흔들릴 수는 있어요. 대나무 같은 선교사, 대나무 같은 목사가 됩시다. 우리 모두.”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