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페라 융성? 성악계 각성·단합부터!… 민간 주도 ‘융성위원회’ 출범 기대와 우려의 눈길

입력 2015-03-30 02:47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한국오페라융성위원회 발족 기자간담회에서 공동대표를 맡은 탁계석 평론가가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새로운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50∼60대 성악가가 맡아야 한다.”

지난 24일 열린 한국오페라융성위원회(이하 융성위) 발족 기자간담회에서 공동대표를 밭은 박현준 한강오페라단 단장은 자질논란 끝에 사퇴한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후임에 성악가가 임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융성위는 지난 1월 한 단장 취임 이후 이에 반대하며 사퇴운동을 벌였던 한국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핵심 인물들이 만든 조직이다. 21명으로 된 설립 발기인에는 지휘자인 김덕기 서울대 교수도 있지만 박 단장을 비롯해 박기천, 박미혜, 연광철, 조장남 등 음대 성악과 교수들과 김기원, 박기현, 조장남 등 민간 오페라단 단장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한국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민간이 주도하는 오페라시장 활성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탁계석 융성위 공동대표(평론가)는 “개인 오페라단이 150여개가 넘고 작품 완성도는 떨어지고 티켓 가격은 비싸 관객들을 오페라로부터 쫓아내고 있다”며 “이들 오페라단에 대한 정비작업을 해나가는 한편 국제오페라페스티벌을 개최해 국가 주요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융성위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다. 한국오페라의 미래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국립오페라단 차기 예술감독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한국 공연계 상황을 도외시한 채 비현실적 목표만 쏟아냈기 때문이다. 공동대표인 김덕기 교수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비대위를 해체한 후 이참에 한국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었다”면서 “취지 자체에 공감해 나도 참가했지만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성악가가 맡아야 한다는 발언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1962년 설립된 국립오페라단은 이소영(2008∼2010)과 김의준(2011∼2013) 단장을 제외하면 그동안 성악가가 단장직을 독점해 왔다. 2008년 정은숙 전 단장이 물러나고 신임 단장으로 오페라 ‘황진이’ 등을 작곡한 당시 이영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내정되었을 때 성악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이 교수는 자진사퇴해야 했다.

그러나 해외 오페라하우스나 오페라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은 성악가보다 지휘자가 맡는 경우가 대다수다. 간담회에서도 “성악가가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맡아야 한다는 발상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기자들의 지적이 나오자, 박 단장은 “최근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연출가와 극장 경영자가 맡았으니 이번에는 성악가가 맡을 차례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실제 한국오페라계 발전에 민간의 공은 크다. 1948년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 ‘라 트라비아타’를 올린 것도 최초 민간 오페라단인 국제오페라사였다. 국립오페라단 설립 이후에도 오페라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민간이었다. 하지만 전국 대학에 음대가 설립되고 성악도들이 많이 배출되면서 유럽무대에서 활동하지 못하거나, 국내 강단에 설 수 없게 된 성악가들이 스스로 오페라단을 만들게 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이들 오페라단들은 기업 협찬을 얻기 위해 이벤트성 공연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 한국 오페라계를 휩쓸었던 ‘운동장 오페라’ 광풍이 대표적이다. 기업 협찬과 티켓을 교환한 민간 오페라단들은 티켓 가격을 수십만 원대로 높여 일반 관객이 접근할 수 없도록 했다. 이들이 매년 정기 공연을 올리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따라서 융성위가 위기에 처한 민간 오페라계 타개책으로 정부, 기업과 예술의전당의 협조를 얻어 국제오페라페스티벌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이벤트를 갖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현재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과 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 오페라도 관객 동원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공연된 오페라 편수만 무려 220개(인터파크 기준)였다.

따라서 융성위가 발족했지만 국내 민간 오페라계 전체가 뜻을 모으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성악가들이 단결해 민간 오페라단을 키워낸 일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단원만 2000명이 넘는 후지와라 오페라단이나 니키카이 오페라단은 연간 여러 편의 작품을 제작하며 성악가 교육 등에도 앞장서고 있다. 오페라 평론가 이용숙씨는 “서양 오페라가 뒤늦게 이식된 한국에서 오랜 극장문화를 가진 유럽과 똑같은 환경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면서 “일본에서 20세기 전반 유명한 성악가였던 후지와라 요시에를 중심으로 성악가들이 뭉쳤던 것처럼 국내에서도 존경받는 원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민간 오페라단을 발족시킨다면 좋겠지만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