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4일. 골동상이 즐비한 서울 인사동 2층 건물에 낯선 간판 하나가 걸렸다. ‘현대화랑’. 화랑이 뭐하는 지 일반인은 모르던 시절이라 ‘젊은 여자가 겁도 없이 돈을 들였다’고 주변에선 수군거렸다. 이후 사세는 커졌고 75년 청와대 앞 사간동으로 이전해 ‘사간동 화랑시대’를 개척했다. 87년 ‘갤러리현대’로 바꾸고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에 참가하며 국제화 시대를 선도했다. 겁 없던 27세 여장부가 설립한 국내 첫 본격 상업화랑이 올해 45주년을 맞는다.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해온 시간이다. 그래서 박명자(72·사진) 갤러리현대 회장의 이름 앞엔 ‘한국 화랑사의 산증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는다. 그가 최근 몇 차례의 대면 및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소회를 국민일보에 전했다.
-반도호텔(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안의 반도화랑에서 일하며 화랑과 인연을 맺었는데.
“(1956년) 미국의 아시아재단 지원을 받아 생긴 곳이다. 이대원 화백이 관리를 맡았는데 6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이라 외국인이 기념품으로 살만한 작은 그림이나 걸 수 있었다. 10년 가까이 일하다가 69년 둘째(도형태 현대화랑 부사장)가 태어나 화랑을 그만 뒀다. 그러자 김기창, 박래현, 천경자, 도상봉 등 가깝게 지내던 화가들이 아까운 안목 썩히지 말고 도와줄 테니 화랑을 차리라고 권하셨다. 그 분들과 70년 개관전을 했다.”
-‘현대’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시어머님이 처음 ‘한국화랑’이라고 지어오셨다. 그런데 풍곡 성재효 화백이 진부하다며 ‘현대화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현대’가 신선하게 느껴졌다.”(당시 인사동은 고서화를 거래하는 전통 미술 위주였다. 서양화를 취급하면 굶어죽기 십상이었지만 박 회장은 현대미술 작가를 적극 발굴했다. 이중섭, 박수근, 도상봉, 윤중식 같은 구상계열 뿐 아니라 당시로선 첨단인 추상화까지 소개했다. 미술 전문잡지 ‘화랑’도 발간했다.)
-추상 전시 결심이 쉽지는 않았겠다.
“재불 여성화가인 이성자 선생이 65년 동숭동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첫 귀국전을 갖고 추상미술을 선보였다. 이대원 화백이 꼭 가보라 권해서 봤는데 충격을 받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이게 계기가 돼 72년 (문자추상으로 유명한 프랑스 유학파) 남관 작품전을 열게 됐다.”
-75년 지금의 사간동으로 이전했는데.
“프랑스에 계신 이응로 선생과 자주 연락했다. 전시를 하려면 ‘이만한 벽면에 이만한 공간은 갖춰야 한다’고 하시더라. 현대미술을 하려면 큰 공간이 있어야겠구나 싶어 사간동에 새 건물을 지어 옮겼다.”(사간동 시대와 함께 현대화랑의 한국 추상미술 전시는 본격화됐다. 한국 현대미술의 새 흐름이 된 단색화 화가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등의 개인전을 대대적으로 기획했다.)
-박근혜정부가 문화융성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이 꽃 핀 시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였던 것 같다. 문화마인드가 최고였다. 기록화 사업도 하고 국전 출품작을 국가에서 사주기도 했다. 64년 박 전 대통령이 해외 차관을 얻으러 미국과 독일을 갈 때 제일 잘 나가는 국내 화가가 누구냐며 우리 화랑으로 연락이 왔었다. 그 때는 서양화는 인기가 없었고 동양화가 최고였다. 청전 이상범이 제일 인기였다. 10폭 산수화 병풍을 당시 최고가인 60만원에 사 미국에 갖고 가셨다. 독일에 갈 때는 심산 노수현의 병풍 그림을 50만원에 구입해 가셨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최고의 성의를 표하신 거다.”(박 회장은 청전 그림을 표구해 청와대에 전하러 갔을 당시 일화를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이 청전 그림 속의 초가 풍경을 가리키며 “우리나라가 아직도 이렇게 사는 걸로 알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니까, 육영수 여사가 “우리의 옛 것을 보여주는 거다. 깊이가 있으니 꼭 가지고 가시라”고 권했다고 한다.)
-다른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수근 30주기 전시회 때(95년) 다녀가셨다. 현대화랑 30주년 전시회(2000년) 때는 이희호 여사가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과 오셨었다. 지금은 그런 문화가 없으니….”
-재벌들은 어떠했나.
“삼성의 미술사랑을 백안시하는 건 잘못된 거다. 재벌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문화마인드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현대그룹은 멋쟁이였던 이춘임 부회장이 그림을 좋아해 임원들과 오곤 했다.”
-회고록을 쓸 계획은 없나.
“사료가 될 테니 정확해야 하는데 지금은 바빠서 쓸 시간이 없다. 화랑 문을 닫을 수도 없고.”(웃음) (박 회장은 이중섭을 ‘천재 화가’, 박수근을 ‘꾸준한 화가’라고 평가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박정희 前대통령, 1964년 訪美 때 청전 그림 60만원에 사갔다”
입력 2015-03-30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