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우루과이라운드가 발효되자 농촌사회의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값싼 해외 농산물 때문에 농촌이 붕괴될 것이라는 예상이 봇물을 이루었고 농촌교회의 미래를 비관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농촌선교훈련원은 농촌선교의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95년 1월 설립된 단체다. 훈련원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차홍도(59) 목사. 그는 훈련원 총무로 일하다가 2000년부터 원장을 맡아 단체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에서 차 목사를 만났다. 훈련원 설립 20주년을 맞아 농촌선교의 현실과 비전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농촌교회가 전부 사라질 것”이라며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수많은 농촌교회가 존폐 기로에 서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농촌 인구가 1200만명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70만명 수준이죠. 사람이 줄어드니 아무리 유서 깊은 교회라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겁니다. 탄광이 폐광되자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던 수많은 ‘탄광촌 교회’의 전철을 농촌교회들이 밟고 있습니다.”
경기도 김포 출신인 차 목사는 감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85년부터 농촌선교에 매진해 왔다. 85년 충북 제천 송계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그는 89년 충북 음성으로 거처를 옮겨 음성농민교회를 개척했다. 훈련원 설립 이전까지 그는 이 교회에서 농촌선교에 전념했다.
“훈련원을 세운 뒤 농촌교회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활동을 벌였습니다. 특히 농촌 목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농촌교회 목회자들을 보면 도시교회로 옮겨가기 전 잠시 머무는 ‘정거장 목회’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정거장 목회’의 흐름을 ‘정주(定住) 목회’로 바꾸는 데 집중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농촌 목회자를 만났고 가시적인 변화도 이끌어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런데 이날 차 목사의 발언을 듣는 내내 이런 의문이 들었다. ‘농촌교회의 몰락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 농촌교회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무슨 이유에서 이 사역에 매진하는 걸까.’ 이 같은 생각을 내비치자 그는 “농(農)은 인간의 근본”이라며 “절대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농촌교회를 살리자는 건 농촌을 살리자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농촌을 살려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우리 땅에서 난 좋은 음식을 먹자는 운동보다 더 중요한 사역은 없겠지요.”
차 목사가 생각하는 농촌교회 살리기 해법 중 하나는 농촌 성도와 도시 성도를 각각 생산자와 소비자로 이어주는 직거래 시스템이었다. 그는 이것을 일컬어 “생명의 망을 잇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일본에는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이러한 방식으로 상생하는 케이스가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도시교회 성도들이 십일조 중 일부를 농촌교회에 보내기도 하지요. 한국교회는 그동안 농촌교회를 살리는 데는 무관심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농촌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이대로 가면 농촌교회 전부 사라집니다”… 설립 20주년 맞은 감리교 농촌선교훈련원 차홍도 목사
입력 2015-03-30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