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예나 지금이나 ‘시치미’ 떼면 안되죠

입력 2015-03-28 02:38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남도 민요 ‘남원산성’의 가사 일부입니다. 날지니는 야생 매이고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는 길들여 사냥에 쓰는 매를 일컫는 말입니다. 수지니는 새끼 때부터 길들인 매이고 해동청(海東靑)은 사냥용 매인데 고려시대 원나라의 간섭을 받을 때 원나라로 보내던 매, 즉 해동의 매라는 뜻이 있다 합니다. 보라매는 1년이 안 된 새끼를 길들여 사냥에 쓰는 매로 아주 용맹하다 합니다. 우리 공군의 듬직한 기상을 뽐내고 있지요.

매를 길들여 토끼나 꿩을 잡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매가 엉뚱한 집이나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는 일이 종종 생겼던가 봅니다. 이때 엉뚱한 곳으로 매가 날아가도 찾을 수 있게 매 주인이 네모난 뿔에 집주소 등을 적어 매 꽁지깃털 속에 매어뒀는데 이것이 바로 ‘시치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것을 탐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 번지수를 잘못 찾은 매를 잡아 시치미를 떼어버리고 자기 시치미를 태연히 매다는 사람이 생겼던 겁니다. 횡령(橫領)이지요. 여기서 자기가 하고도 아니한 체,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태도를 ‘시치미(를) 떼다’라고 하게 된 겁니다.

내 것이 아니면 취하지 마세요. 시치미만 잡아뗀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서완식 교열팀장 suhw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