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유독 빠르고 거칠게 겪었다. 이 과정에서 ‘공간의 가치’는 공간을 쓰는 사람들의 삶보다는 토지와 건물의 효용에 따라 결정됐다. 도시공간은 “나를 좀 보시오!” 외치는 폭력적인 건축물로 뒤덮였다. 작위적인 야경과 하늘을 찌를 듯 올라선 철골들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강요했다. 난개발이었다.
청년 셋이 반기를 들었다. 공공디자인으로 서울을 바꿔보자며 ‘서울10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정성빈(31) 이재원(36) 원광연(31)씨. 이들이 건넨 명함 뒷면에는 강남역 도보 한복판에 거대한 환풍구가 자리 잡은 사진이 홀로그램으로 인쇄돼 있었다. 명함을 살짝 기울이자 마릴린 먼로가 환풍구 위에서 바람에 말려 올라간 치마를 끌어내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길을 막는 장애물에 이런 팝아트를 입히면 완전히 다른 거리가 된다는 메시지였다.
이들은 6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서 이처럼 작은 아이디어로 도시를 즐겁게 만드는 상상을 한다. 이런 식이다. 거리를 걷다가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할머니가 보이면 사진을 찍어온다. 컴퓨터그래픽 작업으로 사진 속 계단 초입에 지팡이가 든 바구니를 그려 넣고는, 작업 전후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다. 붉은 벽돌담 사진에 가로로 긴 구멍을 뚫어 지나가는 이들에게 뜻밖의 전망을 선사하는 상상도 하고, 오열(伍列)을 무시하고 난잡하게 깔린 맨홀 사진에 물방울무늬 작업으로 유명한 예술가인 쿠사마 야요이 스타일로 총천연색을 입혀 보기도 한다. ‘거리를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라는 무언(無言)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상상들’을 모아 책을 냈다. 지난 24일 늦은 오후 서울 송파구 강남청년창업센터에서 이들을 만났다.
설계자가 그은 1㎜의 선
이들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선후배다. 학교에서는 전통 조경을 배웠다. 정씨는 학부를 마치고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유학을 떠나 도시건축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씨와 원씨는 조경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각기 다른 삶을 살다 다시 뭉친 건 정씨가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한 권의 책, ‘RTM100’ 때문이었다. 로테르담의 도시공간을 바꿀 100가지 아이디어를 비포 앤드 애프터(before & after) 사진으로 담은 책이다. 이들은 같은 방법으로 ‘서울100’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 사무실은 서울시 청년창업지원 대상으로 뽑혀 얻었다.
1980년대 초중반 각기 다른 지방도시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후 상경한 이들은 도시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컸다.
경북 포항에서 난 원씨는 해가 질 즈음이면 바다로 나가 조개를 잡았다.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면 순식간에 해수면이 높아지기 때문에 황급히 백사장으로 물러서야 했는데, 그러면 바다의 수평선을 따라 눈앞에 회백색의 제철소 건물이 일자로 펼쳐졌다. 원씨는 “처음엔 백사장이 없어지더니 이어서는 조개가 없어졌다. 그리고는 바닷물이 탁해지더니 어느 순간 어린 시절의 풍경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정씨의 고향인 경기도 부천 역시 그가 어릴 때만 해도 곳곳이 복숭아밭이었다. 정씨는 “논밭에 나가 콩 따서 구워 먹으며 놀았던 동네가 20여년 만에 완전히 아파트촌이 됐다. 그 역동적인 변화 과정을 두 눈으로 다 봤다”고 회상했다.
이런 성장배경은 서울100 프로젝트의 기반이 됐다. 이들은 관(官) 주도 대규모 택지개발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씨는 “넓은 땅을 압축한 지도에 설계자가 1㎜짜리 선을 하나 그으면 컴퓨터 화면 속에서는 일개 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땅에 직접 발을 딛고 보면 몇 미터, 몇 십 미터의 긴 거리”라고 입을 뗐다. 그는 “설계도면의 아주 작은 부분이 그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설계를 하며 자본과 시간에 쫓겨 이런 것까지 고려하는 개발자들이 많지 않다”면서 “항공사진으로 볼 땐 단정하고 예쁜 도시라도 실제로는 곳곳에 불편과 비효율적 디자인이 난무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대형 개발 사업을 주로 처리하던 설계사무소에서 9년간 일하며 삶을 반영하지 못하는 공공디자인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도시에 삶을 새기는 일
이른 아침 대문을 열고 나와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도시공간을 통과한다. 하지만 각기 다른 의미와 기능, 역사를 가진 그 공간들을 ‘내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너무 빨리 변하는 도시는 사람들이 공공 공간에 정을 붙이는 걸 방해했다. 그렇다보니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집에만 애착을 갖는다. 정씨는 “도시공간은 사람들의 삶과 흔적을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며 “각 공간을 출퇴근길, 등하교길, 휴식처 등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직접 공공 디자인에 참여해 도시를 바꿔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지난달 페이스북 계정을 열었다. 아이디어를 이미지화한 결과물을 올리고 시민들의 의견을 받았다. 때로는 시민들의 반응을 도발한다. 주택가 담벼락에 인공암벽 시설물을 설치한 아이디어에 누군가 “위험해 보인다”고 딴죽을 걸자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응수하는 식이다. 순식간에 1500여명이 이들의 계정에 ‘좋아요’를 눌렀다.
이들의 다음 목표는 서울100 프로젝트를 서울을 벗어나 더 먼 곳으로, 유행처럼 퍼뜨리는 것이다. 컨텐츠의 소유권은 어찌 되느냐고 물었다. 원씨는 “우리가 배를 좀 더 오래 곯게 되더라도 이 사업이 뉴욕100, 런던100 등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으로 퍼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벌써 전남 해남의 사회복지재단 이사, 부산의 프리랜서 건축가 등 많은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서도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만남을 청해 왔다.
2011년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은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했다. 새로운 도시공간을 꿈꾸는 이 청년들은 매일 골목을 천천히 걷는다. 느려도 인간답게, 투박하고 지루한 도시에 사람들의 삶을 새길 방법을 찾고 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서울100 프로젝트’] 작은 아이디어의 힘, 도시가 하하 웃는다… 세 청년의 유쾌한 상상
입력 2015-04-04 02:58 수정 2015-04-04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