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가 타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맺는 것은 우리 경제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만 최근 정부가 중국과의 FTA를 체결하면서 부분적으로 매우 신중하지 못한 대목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분야의 협상 내용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소재 분야, 특히 첨단 탄소섬유를 포함하는 섬유 및 복합재 소재 분야의 대중 수출입 시 관세의 불평등이다. 탄소섬유는 강철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가볍지만 강도는 10배에 달해 미래의 ‘꿈의 소재’라 불린다. 주로 항공기, 열차, 자동차 등의 내외장재 및 풍력용 블레이드 소재, 스포츠레저산업에 이용되며 그 수요 또한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소재를 활용하면 자동차 등 모든 수송수단의 경량화가 가능해 연비를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 첨단 항공기 구조물과 미사일 같은 국방산업에도 활용 가능하다. 탄소섬유는 그간 미·일 등 일부 국가만 생산해 왔지만 근래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로 국내 개발을 완료했고 아울러 세계 제1위 일본 업체가 국내 현지 생산하여 국내 공급과 해외 수출을 겸하고 있다.
문제는 첨단 소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육성해온 정책과는 별개로 통상정책 당국의 안이한 자세에 있다. 이는 한·중 FTA 협상 때 드러난 두 나라의 첨단 소재에 대한 시각차에 기인할 수도 있겠다. 다만 섬유 복합소재의 한·중 간 불평등 관세를 방치하는 것은 그 여파가 매우 심각하다. 한·중 FTA 타결 이후 한국의 대(對)중국 탄소섬유류 수출은 기존 17.5%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중국의 대한국 수출은 관세가 즉시 철폐된다. 명백한 불평등 관세다. 이뿐 아니라 중국은 탄소섬유류 품목을 세분해 관리하며 미래를 대비한 반면 한국은 단일 코드로 대응하였다. 또 다른 복합재 소재인 유리섬유류도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기존 관세율을 유지하나 중국의 대한국 수출은 10년 후 철폐하기로 합의하였다.
현재 범용 탄소섬유 분야에서 국내 기술이 중국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부분이 있으나 이는 중국의 기술발전 추세로 미뤄볼 때 낙관하기 어렵다. 특히 양국 간 불평등 관세는 머지않아 국내 관련 산업의 경쟁력 상실을 가져올 뿐 아니라 최첨단 항공기를 포함한 국방산업에도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최근 휴대전화의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 시장을 장악하던 삼성전자가 중국 업체의 급속한 약진에 발목을 잡힌 사례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중국에는 300여개 탄소섬유 생산 업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은 전기 소비가 많은 탄소섬유 생산에 경쟁력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변화는 순식간에 다가올 수 있다. 다양한 첨단 소재 기술이 풍부한 자본과 결합함으로써 가까운 미래에 경쟁력을 갖춰 세계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첨단 탄소섬유 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현재의 한·중 FTA 중 복합소재 분야의 불평등 관세를 용인하는 실수를 범해선, 한국은 중국 기업에 떠밀려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첨단 복합소재산업은 물론 자동차 항공우주 등 연관 산업의 미래까지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개도국과의 FTA는 그들의 현재 기술 수준뿐 아니라 잠재적 능력이 만들어낼 미래상황까지도 충분히 고려해 협상해야 마땅하다. 앞서 거론한 불평등 관세 시정은 물론 첨단 소재산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더욱 강화해야 마땅하다.
김천곤·KAIST 교수/ 복합재료학회 회장
[기고-김천곤] 첨단소재산업을 버릴 셈인가
입력 2015-03-28 02:20 수정 2015-03-28 0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