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고난주간을 맞을 때마다 주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당한 고난이 어떤 것인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당한 고난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으면서 겪는 여러 형태의 고난입니다. 육체를 입었기에 채찍질을 당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진 채 골고다에 오르는 일,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는 십자가 형벌을 감당하며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둘째, 정신적 고통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향해 사람들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조롱하고 멸시했습니다. 죄 없으신 이가 죄인 취급을 당하며 조롱받는 일은 육체의 고통보다 더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예수께서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고통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심판자가 되고 자신은 온 인류를 대신한 죄인의 대표가 돼 심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언제나 사랑으로 함께 동행했고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의 죽음이지만 성자가 죄인의 대표가 돼 가장 사랑하는 성부에게 진노의 대상이 됐다는 것을 예수께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렸을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성경에 언급된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유일하게 고통을 호소한 말씀입니다.
성자 예수께서는 왜 그토록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요. 성부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고 기뻐하는 ‘인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 7∼8절에서 ‘종의 형체를 가졌다’는 말씀과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절대 복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성자 예수님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기쁨이요, 가치요, 행복이었던 겁니다. 그랬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기득권도 포기할 수 있었고 어떤 희생과 고난도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성자 예수를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여주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올해도 고난주간이 돌아왔습니다. 금년은 ‘주님께서 얼마나 고난을 받으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감상적인 생각에만 머물지 맙시다. 대신 주님의 마음과 삶의 모습을 온전히 닮고 배울 수 있도록 힘씁시다. 성자 예수처럼 하나님의 뜻을 가장 귀히 여깁시다.
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득권은 버리고 자신을 희생해 고난을 감수한 주님의 마음과 삶의 자세를 본받읍시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기뻐하시고 지극히 사랑하시듯 주님의 마음을 품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김명섭 목사 (서울 대광교회)
[오늘의 설교]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
입력 2015-03-28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