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긴급조치 발령 자체가 불법행위는 아니다”

입력 2015-03-27 02:27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발령한 긴급조치가 차후에 위헌·무효로 선언됐다 해도 이를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한 민사상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통령은 긴급조치권 발동에 대해 정치적 책임만 질 뿐이라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6일 최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국가는 최씨에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1978년 서울대에 다니던 최씨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영장 없이 끌려가 20여일 구금됐다. 최씨는 긴급조치를 발령한 박 전 대통령과 중정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고통을 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판결문에 이유를 적시하지 않은 채 최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명백히 헌법에 위반되는 긴급조치 9호를 발령한 것은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 위반”이라며 “대통령의 고의 내지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를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고 전제했다. 이어 대통령은 국가긴급권 행사에서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뿐이며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는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설령 긴급조치권 행사 행위가 사후에 위헌·무효로 선언된다 해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