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성] “성숙은 더 높아지는 것 아닌 더 깊어지는 것 ”

입력 2015-03-28 02:31
서정오 목사가 25일 오후 서울 동숭교회 예배당에서 수요직장인예배가 끝난 후 돌아가는 교인들을 밝은 미소로 배웅하고 있다.
‘깊어지는 인생’(성서원)을 쓴 서정오(63) 목사가 소개한 ‘성숙의 출발점’에 나오는 얘기가 참 재미있다. 교회 옆에 술집이 있었다. 밤낮 술 취한 사람들이 오가는 통에 시끄러워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교인 몇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 술집이 불이 나든 홍수로 떠내려가든 어떻게 하든 망해서 예배 좀 제대로 드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며칠 후 정말 그 술집이 불이 나서 몽땅 타 버려 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술집 망하라고 교인들이 기도했었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난 술집 주인이 법원에 고소를 했다. “저 교회 교인들이 우리 술집 불나라고 기도해서 불이 났기 때문에 손해 배상을 청구합니다.”

소송 사건을 맡은 판사가 사실 심리를 위해 목사를 불러서 물었다. “당신네 교회 교인이 정말 이 술집에 불이 나라고 기도해서 불이 난 겁니까?” 판사의 말에 목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니, 불이 나라고 기도한다고 어떻게 술집에 불이 납니까? 세상에 별 우스운 사람들도 다 있네.” 목사의 말이 무섭게 판사는 기가 막힌 판결을 내렸다. “술집 주인은 믿음이 있고, 교회 목사는 믿음이 없다!”

예화를 든 서 목사는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술집 주인은 교인들이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했습니다. 나름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목사는 ‘불이 나라고 기도한다고 정말 불이 나겠느냐’면서 의심했습니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즘 불신자들이 신자들보다 오히려 더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20쪽)

서 목사는 이 책에서 믿음이 신앙생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듯 자신의 미성숙함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성숙’에 다다르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선 이들에게 베드로후서 1장 5∼7절 말씀에 등장하는 10가지 덕목을 제시하며 성숙한 삶, 깊어지는 신앙의 길로 안내한다.

“지금, 당신의 인생은 깊어지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세상 어느 누구도 선뜻 “예!”라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자신 있게 “나는 성숙한 사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연약함과 미성숙함을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강원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강원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지냈다. 뒤늦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장로회신학대 신대원, 프리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양정교회를 거쳐 1995년부터 젊은이의 거리 대학로에 위치한 동숭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으며 문화와 영성을 핵심으로 하는 별 다섯 개짜리 ‘오성교회’를 향한 비전을 심고 있다.

25일 동숭교회의 자랑인 젊은이들의 집합소 카페 ‘에쯔(ets)’에서 만난 서 목사는 자신을 ‘요놈’(요놈의 나)이라고 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드리는 특별새벽기도 주제가 요나서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요나와 같은 인물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교회 나이와 동갑인 서 목사는 “성숙은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성숙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며,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죠.”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