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즌 사이언스(citizen science)’. 번역하면 ‘시민 과학’ 혹은 ‘시민 참여형 과학’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전문가(과학자)-비전문가(시민) 협업 시스템이다. 일반 시민이 거대한 과학 연구나 환경 탐사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해 호기심을 충족하고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과학자들은 연구 분야나 실험실을 대중에게 오픈하고 난해한 과제 해결을 위해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도움을 받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과학자 입장에선 비용·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미국 등에선 이런 시민 참여 과학의 기회와 공간이 매우 활성화돼 있고 과학자와 시민들의 공동 작업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과 유비쿼터스 인터넷 환경,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은 지역·국경을 초월한 시티즌 사이언스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잠자리 무리의 행동 패턴을 관찰해 기록하는 ‘잠자리 군집 프로젝트(Dragonfly Swarm Project)’는 2010년 시작해 5년째 미국 전역의 시티즌 사이언티스트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공원, 산 등에 사는 동물 개체수를 조사하는 ‘포유류 프로젝트(eMammal Project)’는 페이스북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화성 탐사 챌린지(Mars Balance Mass Challenge)’는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시민 과학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받고 있다.
일각에선 비전문가들의 과학 참여가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시민 과학자들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과학 연구 흐름을 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과학자의 연구 방법과 설계, 참여자 교육 등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시티즌 사이언티스트가 참여해 완성된 연구 논문이 관련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시민 과학이 조금씩 소개됐다. 정부 연구기관도 과학문화 정책을 지금의 ‘과학 대중화’에서 보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과학의 참여 민주주의 실현 같은 거버넌스(정책 결정) 문제로 논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시민과학을 과학 시민운동쯤으로, 이데올로기적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성향이 강하다. 원자력이나 핵폐기물 같은 민감한 과학 이슈에 시민단체나 일반인들이 참여함으로써 오히려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는 인식도 여전하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고유 영역에 비전문가들이 끼어드는 것을 터부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티즌 사이언스가 깊게 뿌리내린 나라들에선 시민운동이나 거버넌스 같은 거창한 것들과는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생활 속 작은 과학 실천’ 그 자체다.
곧 ‘과학의 달’ 4월이다. 정부나 유관기관에서는 매년 그랬듯 각종 과학 축제나 체험 행사들을 쏟아낼 것이다. 대다수가 반복적인 일회성 이벤트들이다.
우리나라에 시티즌 사이언스가 풀뿌리 과학문화로 자리 잡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하지만 과학 발전에 시민사회의 역할이 많이 요구되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려면 이제 보다 실질적이고 중장기적인 시민 참여형 과학 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은 과학자와 시민, 정부 등 각 주체들이 시민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세 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태원 온라인뉴스부 차장 twmin@kmib.co.kr
[세상만사-민태원] 이젠 ‘시티즌 사이언스’다
입력 2015-03-27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