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상춘 (8) 1억4000만원대 어음 최종 부도를 막아준 기도

입력 2015-03-27 02:36
장학사업 외에 이웃을 돕는 일에도 수시로 나서고 있는 이상춘 이사장(가운데)이 한 암환자의 수술비를 지원한 뒤 함께했다.

내가 용산스프링 공장장으로 근무할 당시 바로 맞은편에 I전기공장이 있었다. 후일 I전기는 크게 확장되어 부천으로 이전한 상태였다. 전기 소켓과 밥솥코드 등을 만드는 I전기 사장님은 용산에 있을 때 사장님이 직접 오셔서 나와 기술 상담을 하기도 했던 분이었다. 몇 년이 지난 뒤 영업차 사장님을 찾아갔더니 아주 반갑게 맞아주고 차를 대접해 주셨다.

당시 I전기는 제법 유명해 부천에 몇 천평 되는 공장도 있고 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직 내가 공장장인줄만 알았던 사장님은 그 사이 내가 용산스프링을 거쳐 공장을 차리고 오너가 된 것을 설명하자 잘 생각했다고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저희 회사에 일감이 별로 없습니다. 사장님 일감을 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장님은 바로 인터폰으로 구매과장을 불러 일감을 줄 수 있도록 해보라고 지시했고 구매과장은 곧바로 나를 자기 방으로 안내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현장에서 30여종의 샘플을 가져와 이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것은 20% 정도였다. 나머지는 외주처리할 것을 생각하고 모두 해드리겠다고 하고 주문을 받았다. 회사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고 샘플을 만들어 갖다 주는 것마다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주문으로 이어졌다.

회사는 철야근무를 해야 할 정도로 주문량이 많아졌고 나도 사원들과 함께 철야를 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통로를 열어주신 것이라 여기고 밤낮없이 일을 했지만 피곤치 않았다.

그런데 이 큰 회사에서 결제를 약속어음 5개월짜리로 끊어주는 것이었다. 말이 5개월이지 월말 마감에 다음 달 말일 결제를 하면 결국 7개월 후였다. 보통 돈이 급하면 사채시장에 가서 할인(일명 와리깡)을 해서 급한 불을 끄는 것이 당시의 기업들이었다.

7개월 후 내가 I전기에서 받아야 할 돈이 무려 1억4000만원 정도가 될 정도로 크게 불어 있었다. 그때 나 역시 신용이 있어 재료상에서 내게 외상을 주어 물건을 만드는 데는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무렵 I전기가 부도날 수도 있다는 소리가 얼핏 들렸고 I전기의 분위기나 직원들의 표정도 좀 어수선 한 것 같았다.

사업경험 없이 순진하기만 했던 나는 종업원이 수백명인 이렇게 큰 회사는 부도가 안 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부도 이야기가 들려도 한쪽으로 흘려버리고 일을 열심히 해서 납품 기일을 맞추는 데만 집중했다.

그런데 우리 회사 결제가 돌아오는 이달 말쯤 부도가 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번엔 느낌이 심상치 않아 I전기로 달려갔다. 회사에 가서 사장 동생인 전무를 만났다. “부도가 난다니 사실입니까?”라고 묻자 전무는 스스럼없이 “사실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하늘이 푹 꺼지는 것 같았다.

전무는 나를 의자에 앉히면서 “I전기의 가장 큰 거래처인 S알미늄이 부도 처리되었고 받을 돈 몇 십억원을 못 받는 바람에 연쇄 부도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억울해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믿었던 사장님은 20일 전 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동안 자재를 사느라 들어간 돈에 외상에, 밀린 결제를 생각하니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1억4000만원이면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다 팔아도 못 미치는 엄청난 액수였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