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한국의 문화유산] 신식무기 처음 만든 번사창

입력 2015-03-27 02:04
삼청동 번사창. 서울시 제공

개화운동의 자취가 서울 삼청동에 남아 있다. 중국식 벽돌집인 번사창(飜沙廠)이다. 영선사로 청국에 파견된 사람들이 돌아와서 1884년 기기국의 북창에 만든 무기 제조창이다. 아편전쟁의 충격으로 청국은 양무운동, 일본은 메이지유신에 힘을 쏟았다.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자강운동이 핵심이다. 조선은 뒤늦게 톈진에서 무기 제조법을 배워와 작은 번사창을 만들었다. 기기창은 용광로를 두었던 숙철창, 총신을 만드는 동모창 등 5개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번사창만 남았다. 번사는 흙으로 만든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주조하면서 모래에 뒤친다는 뜻이다. 일본이 1894년 폐쇄시킨 후 제조창 기능은 사라졌다. 1935년엔 세균검사실, 광복 후 중앙방역연구소로 사용했다. 1976년부터 한국금융연수원 창고로 활용했으나 1984년에 건물을 보수했다. 이때 상량문을 찾아내 이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확인했다.

“무기를 저장하고자 쇠를 부어 흙과 합쳐 건물을 지으니 이를 번사창이라 하였다.” “정예한 무기를 제조 수선 보관하는 건물은 으뜸가는 수준으로 지어야 한다.” 상량문 일부 내용이다. 최근 한울문화재연구원이 번사창 옆 초기 건물지를 발굴했는데 앞으로 관련 유구도 노출 전시할 계획이다. 가로 25m, 폭 8.4m, 높이 10m의 번사창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51호다.

최성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