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1조 벌어들인 뉴욕패션위크… 서울이라고 못할쏘냐

입력 2015-03-27 02:13 수정 2015-03-27 17:56
‘2015 가을 겨울 서울패션위크’ 첫날인 20일 진행된 ‘반하트 디 알바자’의 피날레 무대. 반하트 디 알바자는 ㈜신원의 글로벌 남성복 브랜드. 서울패션위크 제공
신진 디자이너 김희진의 ‘KIMMY.J’는 24일 남성복과 여성복을 함께 선보였다. 서울패션위크 제공
이간수문갤러리에 마련된 수주상담회장에서 상담을 벌이고 있는 바이어와 디자이너들. 서울패션위크 제공
삼성전자가 한상혁 이주영 등 5명의 디자이너와 협업으로 마련한 ‘갤럭시S6 퍼스트 룩’ 쇼에서 모델이 갤럭시S6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서울컬렉션을 후원했다. 서울패션위크 제공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선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엿새 동안 지구촌 멋쟁이들의 패션축제가 펼쳐졌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디자인재단이 주관하는 ‘2015 가을 겨울 서울패션위크’였다. 서울패션위크에는 패션쇼와 전시회 등 다양한 패션관련 행사가 이어졌다. 행사를 보기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바이어들과 패션 전문기자들, 그리고 패션 피플들이 모였다.

패션위크는 계절을 앞서 간다

서울패션위크에선 ‘삼성 갤럭시S6/S6 엣지 서울컬렉션’ 58회, ‘제너레이션 넥스트(GN)’ 21회 등 총 79회의 패션쇼가 열렸다. 서울컬렉션이 열린 1000석 규모인 알림 1관, 700석 규모인 알림 2관은 바이어와 취재진을 포함한 참관객으로 매회 꽉꽉 들어찼다. 어울림 광장 내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GN쇼는 독특한 시각과 참신한 발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패션쇼 관람 연인원은 5만5600여명에 달했다. 국내 중소 패션업체의 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서울패션페어’도 지하 1층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에서 진행돼 바이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모든 쇼와 전시회에는 올 가을·겨울옷들이 소개됐다. 이제 막 봄이 시작됐는데 벌써 가을·겨울옷이라니? 바이어들이 패션위크에 오는 것은 다음 계절에 판매할 옷을 주문하기 위해서다. 패션위크에선 제철보다 6개월 이상 빨리 의류들을 선보인다. 봄·여름용을 소개하는 패션위크는 8∼9월에, 가을·겨울용을 소개하는 패션위크는 1∼3월에 열린다.



19세기에 시작돼

계절을 앞서 미리 유행할 옷을 선보이는 컬렉션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패션의 나라로 불리는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나폴레옹 3세 비(妃)의 전속 드레스 메이커였던 C.F. 워르트가 1858년부터 1년에 2회 다음 계절의 의상을 발표했다.

요즘과 같이 기성복(프레타 포르테)을 위주로 한 컬렉션이 시작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현대적인 컬렉션을 가장 먼저 선보인 곳은 미국의 뉴욕.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파리의 오트쿠틔르 컬렉션에 갈 수 없었던 미국인들은 자체적인 컬렉션을 기획했다.

우리나라에서 컬렉션이 시작된 것은 1990년. 진태옥 이신우 이상봉 등 12명의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들이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를 발족하고 그해 11월 제1회 SFAA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후 10년 뒤인 2000년 10월, 서울시가 서울패션위크를 창설하면서 또 하나의 컬렉션이 생겼다. 2012년 스파컬렉션이 서울패션위크의 서울컬렉션에 통합됐다.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위크가 세계 4대 패션위크로 꼽힌다. 서울 패션위크는 제5대 패션위크를 목표로 시작됐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현장

이번 서울패션위크에는 이탈리아의 대형 패션 유통 기업인 육스 그룹, 프랑스의 대표적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 홍콩의 하비 니콜스 백화점 등에서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패션 바이어들이 대거 참석했다. 서울디자인재단 패션팀 박내선 팀장은 26일 “서울시가 공식 초청한 68명을 비롯해 디자이너가 개별적으로 초청한 바이어, 해외 패션 전문기자, 유명 패션관련인사 등 500여명이 현장을 지켜봤다”고 밝혔다. 해외 바이어는 300여명으로 추산돼 지난해보다 40%정도 늘었다. 수주상담도 활발히 펼쳐진 편이었다. GN에서 쇼를 한 김무홍씨는 “패션위크 기간 내내 매일 2∼3명씩의 바이어와 활발한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서울패션위크가 아시아 No.1 패션마켓으로 우뚝 솟는다면 서울은 서울패션위크를 통해 1조원의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꿈같은 소리만은 아니다. 미국 패션 일간지 ‘WWD(Women’s Wear Daily)’는 미 하원 합동 경제위원회(JEC) 캐롤린 마로니 의원의 자료를 토대로 뉴욕패션위크가 매년 8억8700만 달러(약 9684억원)를 벌어들였다고 지난 2월 6일자로 보도했다. 지난해 US오픈으로 뉴욕시에 창출된 경제효과 7억 달러(약 7639억원)와 뉴저지에서 열렸던 슈퍼볼의 경제효과 5억 달러(약 5457억원)를 뛰어넘는 수치라고 WWD는 분석했다. 패션위크의 경제적 가치가 큰 것은 전시장에서의 의류 수주계약에 그치지 않고 행사 기획사·개최지·숙박업체·음식점 등 다양한 산업과 전후방으로 연계돼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매우 큰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섬유·패션학부장 주보림 교수는 “컬렉션은 국가 및 도시 이미지 홍보에 크게 기여함은 물론 국가 및 도시 마케팅의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울패션위크를 보러 오는 바이어와 패션전문기자들은 각국 트렌드 리더들이다. 이들이 서울 방문 후 작성한 기사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리는 후기는 트렌디한 서울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K 패션 무한 가능성

세계최대 규모의 뉴욕패션위크와 비교할 때 서울패션위크의 규모나 수익은 아직까지는 초라하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 가요 등의 인기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메이드인코리아(Made in Korea)’ 패션에 대한 선호도는 급상승하고 있다.

서울패션위크 기간 중 DDP에서 만난 중국 등 동남아권 바이어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중국 대형 온라인몰 ‘요호바이’ 비즈니스 매니저 요고 웡씨는 “한국 아이돌이나 TV 스타들이 입고 나오는 옷들은 매출이 급상승한다”면서 “한국이 아시아 유행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유명 편집숍 ‘임멘스 패션’ 바이어 조고 리는 “지드래곤이 입고 나오면 게임종료”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아직 미국이나 유럽에선 K패션 바람이 일고 있지는 않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게 보고 있다. 미국 대형 편집숍 ‘볼버’의 바이어 다니 아렐라노는 “K팝과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한국 디자이너 패션 수주에까지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한국 디자이너들이 강세를 띠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K패션의 물결이 동남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으로 이어진다면 서울패션위크의 경제적 가치는 1조원을 훌쩍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