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조국도 관심 밖 ‘조선籍 재일동포’를 섬깁니다… 선교 보고차 귀국 임엘리야·임사라 선교사 부부

입력 2015-03-26 02:07
임엘리야 선교사(기타 치는 이)가 지난해 5월 일본 지바현에 있는 자택에서 동네 독거노인들을 초청해 위로모임을 갖고 있다. 갈릴리교회 제공
지난해 11월 말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조선적 재일동포를 포함한 교회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 왼쪽이 임사라 선교사. 갈릴리교회 제공
재일동포 2세인 김길성(가명·70대 중반)씨. 경상도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 터를 잡았다. 8·15광복과 6·25전쟁을 거친 뒤인 1960년대 초, 친북 성향의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몸담았던 그의 부모와 형제들은 모두 북한으로 향했다. 당시 18세였던 김씨만 홀로 남았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진 뒤 다른 재일교포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갖기도 했지만 그는 어느 쪽도 택하지 않았다. “분단된 조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신분증 국적란에는 아직도 ‘조선(朝鮮)’으로 표기돼 있다.

외교부 통계(2013년)에 따르면 재일동포는 약 52만명이다. 이 중 한국 국적 취득자는 48만명 정도이고, 김씨처럼 사실상 무국적자인 ‘조선적(籍)’은 4만명(7.7%) 에 이른다. 조선적은 전후(戰後) 일본이 일제강점기 시절 부여했던 재일동포들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고 1947년 외국인으로 등록시키면서 편의상 ‘조선’으로 국적을 표기해 생긴 용어다.

일본 사회에서 조선적 동포는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다. 국적이 없으니 여권이 발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여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주택 임대계약 시에도 보증인을 세우기가 쉽지 않고 은행 대출을 받을 때도 제약이 많다. 취업과 사회생활에서도 차별과 핍박 등 ‘보이지 않는 벽’이 높다.

GP선교회 소속 임엘리야(49)·임사라(44) 선교사 부부는 10년 동안 고군분투하며 조선적 동포를 섬기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 ‘조선적’ 동포를 대상으로 한 사역은 이들이 유일하다. 최근 선교 보고 차 귀국한 임 선교사 부부를 25일 서울 서초구 뉴코리아미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 부부가 조선적 동포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05년.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아이 친구 이름 때문이에요. 아이 이름을 들어 보니 중국 발음 같아서 그 아이 어머니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으니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고요.”(임사라)

임 선교사 부부는 조선적 동포들의 복음화 현황을 조사한 뒤 다시 한 번 놀랐다.

“일본 복음화율은 0.2% 정도로 봐요. 조선적 동포 중에는 기독교인이 거의 없었어요. ‘복음의 황무지’나 다름없었죠.”(임엘리야)

그럴 만도 했다. 조선적 동포 상당수가 재일동포 학교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조총련계 학교에 다니면서 종교에 대해 비판적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가 조선적 동포 사역을 결심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싸늘했다. 괜히 그들을 가까이 했다가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우려와 걱정 속에서 첫발을 뗀 사역은 예상치 못한 열매로 이들 부부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5년 전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조선적 동포인 학부모 A씨를 만났는데,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을 들고 와서 해석 좀 해달라는 거예요. 이 만남을 계기로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했지요.”(임사라)

그 후 A씨는 남편과 딸, 타 지역에 사는 시어머니 등 5∼6명을 전도하는 등 조선적 동포 사역의 핵심 일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 선교사 부부가 섬기는 ‘갈릴리 교회’는 건물이 없다. 다시 말해 조선적 동포를 위한 ‘교회’가 일본 현지에 없다는 얘기다. 사역의 주공간은 지바현의 20㎡(약 6평) 정도 되는 임 선교사 부부 자택이다. 성도는 일본인을 포함해 5가정 15명 안팎이다. 요즘 이들 부부가 집중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안은 조선적 동포를 위한 선교센터를 구하는 일이다.

임엘리야 선교사는 “예배와 양육과 상담과 교제가 가능한 다목적 공간이 절실하다”면서 “광복 70년 만에 처음으로 조선적 동포를 위한 구별된 예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한국 교회들의 기도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