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든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세요”… 기아대책 서정행복한홈스쿨 김월라 시설장

입력 2015-03-26 02:14
김월라 서정행복한홈스쿨 시설장(오른쪽)이 지난 13일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의 홈스쿨에서 김진현(가명)군과 영어소설을 읽고 있다. 평택=강민석 선임기자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불안감, 공허함,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두려움….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흔히 느끼는 감정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된 김진현(가명·12)군도 비슷한 감정을 겪었다. 말수가 점점 줄었고 매사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영어 회화를 배우지 못하면서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김군은 다섯 살 이후 줄곧 학원을 다니거나 개인교습을 받았지만 부모의 이혼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다니던 학원을 그만둬야만 했다.

예전과는 다른 아들의 태도를 본 어머니는 고민 끝에 2013년 집 근처인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의 서정행복한홈스쿨(시설장 김월라) 문을 두드렸다. 서정행복한홈스쿨은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운영하고 있다. 홈스쿨과 같은 건물을 쓰는 예닮중앙교회 사모 김월라(36) 시설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홈스쿨은 취약 계층 아동을 우선적으로 받는데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담임교사 추천으로 이곳을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져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가까스로 생계를 꾸리느라 아들과 같이 지낼 시간도 부족하고 좋아하는 공부도 못시키는 게 안타깝다면서요.”

지난 13일 오후 서정행복한홈스쿨에서 만난 김군의 얼굴에는 구김살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홈스쿨 친구와 형·동생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홈스쿨 생활에 잘 적응한 건 아니다. 결석도 잦았고 설령 오는 날에도 친구와 어울리지 않고 혼자 밥을 먹고 공부했다.

그런 진현이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김 시설장 등 홈스쿨 교사들과 공익근무요원이었다. 진현이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점차 마음을 열었다.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처음과는 달리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때 교사들이 영어에 대한 진현이의 관심과 재능이 남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 시설장은 진현이를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꿈빛재능지원사업’ 대상자로 추천했다.

“방과 후나 주말마다 도서관을 찾아 영어 소설을 읽는 등 열정이 많은 아이라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아이가 꿈에 어느 정도 다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돕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진현이는 지난해 4월 삼성전자 DS 부문의 지원사업에 선정됐고 김 시설장의 도움으로 인근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학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5학년임에도 중학교 2학년 수준의 수업을 들었다. 매주 3일은 방과 후 홈스쿨에 들러 2시간 동안 공부한 뒤 어학원에 가 오후 8시30분까지 상급생들과 영어를 공부하는 강행군에도 진현이는 힘든 내색 없이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그의 재능과 노력은 결국 지난해 9월 ‘전국 초·중 실용영어능력평가대회’ 은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었다.

대회 수상을 계기로 영어에 자신감이 붙은 진현이에겐 ‘저소득층 어린이에게 교육봉사를 하는 동시통역사’란 새로운 꿈이 생겼다. 지금도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것 이외에도 틈틈이 홈스쿨 친구나 후배들의 영어 발음을 교정해 주거나 어머니 미용실을 찾는 외국인에게 통역을 해 주고 있다.

김 시설장은 조만간 한 사설단체의 미국 하와이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진현이를 추천할 계획이다. “진현이가 취약계층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고 기업과 재단에겐 도전을 주는 롤 모델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정 형편이 어려워 꿈을 펼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이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걸 많은 이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평택=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