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5주년] 北, 도발 후엔 “유감”으로 끝… 이전 태도 어땠나

입력 2015-03-26 02:31 수정 2015-03-26 10:17
북한은 분단 이후 수십 차례 대남 도발을 감행해 왔다. 남한의 반발에 대해 북한은 사안마다 대체로 ‘유감 표명’ 수준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북한이 도발에 대해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한 건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1·21사태) 때다. 김신조를 비롯해 정찰국 산하 무장간첩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하다 총격전이 벌어져 군인과 민간인 등 수십명이 숨졌다. 이후 1972년 김일성 주석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1·21사태와 관련해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라면서도 “그땐 나도 몰랐다. 우리 내부의 좌경 맹동분자의 소행”이라고 선을 그었다.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는 발생 사흘 만에 사과 입장을 드러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나무를 베려던 미군을 습격해 2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보복 조치로 한·미 양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실시하자 군사정전위 북측 수석대표 명의로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1996년 9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에는 초기에 잡아떼다 3개월 뒤에 ‘깊은 유감’ 입장을 밝혔다. 강릉 부근에 잠수함이 좌초돼 특수부대원 26명이 강릉 일대로 침투한 사건으로, 군은 49일간 소탕작전을 벌여 13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나머지 11명은 살해된 채 발견됐다.

북한은 사건 6일 뒤 인민무력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정상적 훈련 중 좌초됐으며 잠수함과 승조원을 무조건 송환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후 3개월 뒤인 12월 조선중앙통신 등 매체를 통해 “막심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잠수함 사건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한일월드컵 기간이던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에 대해서는 한 달 뒤 남북장관급회담 김령성 북측단장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북남 쌍방은 앞으로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전화통지문을 전달했다.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격사건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 하루 뒤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박씨가 군사통제지역으로 넘어온 것이 사건의 원인이라면서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처럼 유감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1983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아웅산 테러 사건과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에 대해서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했다.조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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