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동훈] 경제정책 서둘면 그르칠 뿐

입력 2015-03-26 02:38

임금인상 카드를 꺼내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경제5단체장과 금융협회장들을 만나는 등 광폭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금융 수장인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취임하자마자 금융회사들의 자금중개 기능 회복을 위해 금융개혁회의를 꾸리는 등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개혁 시한이 다가왔다며 국민대타협기구와 노사정위에 결실을 맺을 것을 채근한 것도 모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부의 다급함을 엿볼 수 있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정책을 실기(失期)하면 치명상을 입는다. 동남아시아에서 외환위기의 먹구름이 북상하고 있는데 ‘펀더멘털(기초체력)’ 타령만 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를 겪은 것은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웠다.

과도하게 조급증 드러내는 정부

하지만 골든타임 사수에 얽매이다 보니 정부가 과도하게 조급증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정부의 경제운용 행태를 보면 오히려 타이밍을 못 맞추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타이밍은 제때 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눈치껏 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지 않을까? 눈치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을 상반기에 앞당겨 집행키로 하는 등 이런 저런 정책 수단을 동원해보지만 동시에 다른 쪽에서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옥죄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최 부총리가 경제5단체장을 만나 임금인상을 통한 소비 활성화를 강조할 때 이완구 총리의 느닷없는 부패와의 전쟁 선언에 검찰이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재계 때리기에 나섰다. 정부 생각에는 어르고 뺨치는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보고 뭐 하라는 행태냐”며 당혹해하고 있다.

최 부총리가 경제5단체장들로부터 ‘임금인상 불가’라는 퇴짜를 맞고 돌아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부가 조급한 마음에 눈치 없이 바늘허리에 실을 맸기 때문이다. 소비 진작을 위해 참석자들이 골프 회동을 하기로 했다는 것은 1980년대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어르고 뺨치는 행태 바람직하지 않아

지금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굽실대는 개발독재 시대가 아니다. 정책 추진에는 대상이 있는 법이다. 상대방과 박자가 맞아야 한다. 이때 타이밍이 중요하다. 박수 칠 때 왼손과 오른손이 똑같은 속도로 같은 폭만큼 다가와야 가장 큰소리가 난다. 이견이 있는 상대방과 협상할 때 양보를 얻어내려면 이쪽에서 반대급부를 줘야 겨우 움직일까 말까다. 그런데 뺨을 때리며 달라고 하면 줄 사람이 있을까. 물론 마지못해 하나 줄 수는 있지만 진정성이 떨어진다. 기업 심리가 살아날 리 없다.

김영란법만 해도 정치인들 나름으로는 여야가 합세해 타이밍을 잘 맞췄다고 생각할 것이다. 4·29재보선 말고는 올해 내내 당장 표심을 자극할 만한 큰 선거가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취지가 아무리 좋다 해도 왜 하필 소비가 고꾸라질 때 저런 법을 통과시켰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소비의 하방효과가 있는 요식업, 유통업 등 내수 업종의 특성상 서민층 자영업에 그 여파가 어떻게 미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2005∼2009년 접대비 실명제 시행 때 동원됐던 편법이 또 동원될 것이니 걱정할 거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만 해도 3월 말이 다가와서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난 것 역시 타이밍을 놓친 경우다. 민주노총이 손뼉을 마주쳐주지 않은 이상 한국노총과 함께 노동계의 한 축을 이루는 민주노총을 시한 내 만났다는 의미 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