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기업의 脫스펙 채용 보완할 점 적지 않아

입력 2015-03-26 02:36
한국전력공사 등 공공기관 130곳은 24일 기획재정부와 ‘직무능력 중심 채용 양해각서 체결식’을 갖고 올해부터 출신대학이나 학점 등 ‘스펙’을 묻지 않고 직무능력 위주로 신규 인력을 뽑기로 했다. 130곳 중에는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대한지적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하는 공공기관이 대부분 포함돼 있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대기업들의 입사지원서에서도 스펙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인 데다 주요 공공기관까지 가세하면서 앞으로 채용 방식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천편일률적 스펙 쌓기는 취업준비생 개인의 부담을 넘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및 인턴 경력, 사회봉사, 성형수술 등의 스펙을 위해 대졸 취업자 1인당 평균 4300만원을 쓴다는 통계도 있었다. 과도한 스펙 쌓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런 노력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직무능력 중심 채용이 또 다른 스펙을 요구할 수 있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겠다. 온라인에는 벌써 직무능력검사를 위한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시 글이 잇따랐다. 공공기관들이 채용의 기준으로 삼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대비하기 위한 ‘제2의 스펙’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높다는 얘기다. NCS는 취업현장에서 직무 수행에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 소양을 797개 세부 직무별로 표준화한 정부의 데이터베이스다. 특히 NCS는 직군, 직렬, 직종을 세분화함에 따라 지원 기회가 줄어든다는 문제도 있다. 지금까지는 공공기관 여러 곳을 대상으로 취업 준비를 했으나 앞으로는 불가능하다. 직무능력을 돋보이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금융, 공항, 보건, 관광 등 공공기관의 업무별로 맞춤형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이 지나치게 인력 수요자 중심의 실무적 내용으로 바뀔 가능성도 경계해야겠다.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대학이 취업을 위한 맞춤형 인력 양성 기관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안타깝게도 교육 당국이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어 더욱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