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배우성(51)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역사의 오독(誤讀)과 싸우는 중이다. 익숙하고 지배적인 역사 해석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번에 출간한 ‘독서와 지식의 풍경’(돌베개)에서는 조선 후기와 실학을 다룬다. 역사·인문학계가 지난 10여 년간 열광적으로 소비해온 바로 그 주제들이다.
혹시 역사가들이 조선 후기의 역사를 그 실체와는 다르게 현재의 로망을 투영하는데 이용한 측면이 없지는 않을까? 조선 후기가 진정 문화적 황금기이고, 실학은 성리학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적 토대였고, 박지원과 정조 등의 걸출한 인물들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정말 근대지향적이었을까? 배 교수는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당시 지식인들의 독서와 글쓰기, 지식 유통 상황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조선 후기에 대한 연구가 어떤 관성에 기초해 있는 것 같다. 이 시기에 새로 나타난 현상들에 주목하고 이것들을 나열하면서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식이다. 나는 이 시기에 새로운 것들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그 새로운 것들이란 걸 당시의 맥락이나 조건 속에서 배치해 그 위계나 비중을 판단해봐야 그 의미가 제대로 드러난다고 본다.”
25일 전화 인터뷰에서 배 교수가 내내 강조한 것은 ‘맥락’과 ‘위계’라는 말이었다. ‘새롭다’고 할 때 그게 당대에 얼마만큼 새로운 것이었는지, ‘중요하다’고 할 때 그게 얼마만큼의 의미였는지가 그의 주된 관심이었다. 그가 ‘오독’이라고 하는 건 사실을 왜곡했다는 게 아니라 그 정도와 위계에 대한 이해가 빠졌다는 의미다.
그는 정조를 예로 들었다. “정조를 근대지향적 군주라고 본다거나 서양의 계몽군주에 비교하는 건 과도하다고 본다. 성리학과 이질적인 요소들을 수용하려고 한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부분만을 강조하는 게 온당한 평가인지 의문이다.”
그는 “정조 안에는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들이 존재했다. 그 중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가? 어떤 요소들에 반응했고 간섭했는가? 요소들을 어떻게 재배치하려고 했는가? 이런 걸 이해해야 한다”면서 “정조를 둘러싼 요소들의 위계를 세워보자면 가장 상층에 성리학이나 중화(中華·중국 중심의 세계관)가 있는 것이 분명하고, 그런 점에서 성리학적 군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 교수가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읽기와 쓰기를 들여다본 것은 당대 표출됐던 다양하고 이질적인 지적 요소들 사이에서 위계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안정복과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이서구 등 실학자들을 검토한 끝에 그는 “그들은 패관소품과 문체, 서학, 고증학과 양명학 등에 대해 다양한 태도를 보여주었지만,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의리학과 경세학을 정점에 둔 지식의 위계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예컨대, ‘반계수록’을 쓴 유형원은 명나라의 몰락을 슬퍼했으며 명나라의 회복을 누구보다 갈망한 중화주의자였다. 박지원은 양반과 다른 신분층과의 관계에 대해 ‘감히 벗으로 사귀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박지원이 이덕무 박제가 등 중인들을 벗으로 받아들여 함께 도를 도모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썼다. 또 정조가 박지원이나 정약용 등을 등용한 것을 실학적 태도에 대한 지지로 볼 수 있겠는가 의심한다. 정조가 고문을 존중하지 않는 듯한 이들의 문체를 걱정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경세학적 문제의식을 높이 샀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현재의 로망을 역사에 과도하게 투영해 우리에게 필요한대로 역사를 서술해온 건 아닌지, ‘역사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면서 “현재를 과거에 비추어보는 방식이 아니라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까지를 설명하는 새로운 역사 서술에 대해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정조는 계몽군주’라는 평가 과연 정당한가… “로망의 과도한 투영, 역사 誤讀 성찰해야”
입력 2015-03-27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