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0만원 성공신화 잇단 구설에 추락 위기… 검찰 소환 앞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입력 2015-03-25 02:10

지난 19일 경남기업 성완종(64·사진) 회장의 경영권·지분 포기 선언 소식을 접한 증권가의 시선은 싸늘했다. 건설업계를 오래 주목해온 한 중견 애널리스트는 “성 회장은 수년간 경남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직접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그의 자수성가(自手成家) 스토리와는 별개로 ‘경영자 성완종’에게 높은 점수를 주진 못하겠다”고 말했다.

경남기업이 우량주로 언급되던 수년 전에는 이 자수성가 사연의 울림도 컸던 편이다. 성 회장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했다. 가정부 일을 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약국에서 배달 심부름을 했다. 서울 영등포교회의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중·고교 공부를 했다.

그는 고향인 충남 서산에서 화물영업소 일로 번 돈 200만원을 밑천으로 건설업계에 뛰어들었다. 1976년 서산토건, 79년 대아건설에 이어 2003년 경남기업을 인수하며 ‘큰손’이 됐다. 해외 사업을 활발히 펼쳤고 경남기업의 시공능력을 20위권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배용준씨가 등장한 경남아너스빌 아파트 광고로 경남기업을 떠올리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급속 성장에는 잡음이 뒤따랐다. 경영권을 포기할 때 “젊음과 피땀을 바쳤다”고 회고한 건설업계 활동 기간 중 성 회장은 검찰 문턱을 여러 번 넘나들었다. 2002년에는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하청업체에서 모금한 선거자금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건넨 사실이 드러나 수사를 받았고, 2004년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05년 석가탄신일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곧이어 ‘행담도 비리’에 연루돼 2007년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불우한 어린 시절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던 그는 2012년 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해 당선, ‘4수’ 끝에 국회에 입성했다. “경영에서 손을 떼고 정치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던 그였지만, 수시로 기업인의 대변자를 자처했다. 성 회장의 국회 본회의 연설 기록은 2012년 9월 7일의 대표발언 한 차례가 유일한데, 상당 시간은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한 정부의 금융 지원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할애됐다.

경남기업이 좀체 워크아웃을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과 맞물려 그는 지나치게 ‘친정’을 의식한 의정 활동을 펼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 회장은 2012년 8월 정무위원회 회의에서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국가로서는 건설회사가 장단점도 있고 말썽도 많이 일으키지만 버릴 수 없다”며 당시 300억원으로 책정된 브리지론을 “1000억원 정도는 올려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문했다.

정무소위에서 국세청의 기업 징수 강화 분위기를 두고 “요즘 탈세 사실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참 억울한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말한 기록도 남아 있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들은 가장 자주 전화를 걸어오는 국회의원으로 성 회장을 꼽기도 했다.

자원외교 비리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성 회장이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 과정에서 금융 당국과 채권단에 부정한 압력을 행사했는지까지 살피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자원개발 독려 차원의 정부 융자금이 성 회장의 로비나 계열사 살리기에 동원됐는지 여부도 검찰 수사 대상이다. 성 회장의 검찰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는 시점, 경남기업은 “성 회장은 MB맨이 아니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