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갈등 공화국’ 푸는 능력은 하위권… 한국, 사회갈등지수 5위

입력 2015-03-25 02:36

대한민국은 극심한 ‘갈등사회’다. 이념이 다른 상대를 ‘쓰레기’나 ‘벌레’라고 비난한다. 계층 갈등은 ‘갑을 논란’으로 확산됐고, 지역 갈등은 무차별적인 비하로 전염됐다. 노후가 부실한 부모와 취업난에 시달리는 자식의 세대갈등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갈등관리 실패는 사회문제로 이어진다. 자식을 바다에 묻고 단식을 하는 세월호 유족 옆에서 버젓이 ‘폭식 퍼포먼스’를 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오랜 갈등 끝에 겨우 꾸려진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출범조차 못했다. 무상급식, 공무원연금, 정규직 과보호 논란 등 지금도 온갖 갈등에 몸살을 앓고 있다.

◇갈등 많은데 관리능력 ‘바닥’=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포럼 3월호의 ‘사회갈등지수 국제비교 및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4개국 가운데 5위다. 우리보다 사회갈등이 심한 나라는 터키 그리스 칠레 이탈리아뿐이다.

갈등의 골이 깊은데도 이를 관리하는 능력은 낮다. OECD가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는 27위로 하위권이다. 사회갈등관리지수는 0.380에 그쳤다. 이 지수는 1에 가까울수록 갈등 관리를 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덴마크(0.923)나 스웨덴(0.866) 핀란드(0.859) 네덜란드(0.846)는 최상위권이다. 우리는 중위권을 형성하는 영국(0.677) 프랑스(0.616) 일본(0.569) 미국(0.546)에도 한참 못 미친다.

사회갈등은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보사연 정영호 연구위원은 “사회갈등 때문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27%를 갈등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며 “사회갈등 관리가 지금보다 10%만 잘돼도 1인당 GDP가 1.75∼2.41%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위험한 사회’가 잉태한 악순환=갈등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것만큼 갈등이 발생할 요인이 많다는 점도 큰 문제다. 빈곤과 불평등이 날로 깊어지고, 고용환경 불안정이 심해지며, 각종 분야에서 불안이 끊이지 않는 ‘위험한 사회’가 갈등을 낳고 있다. 갈등은 사회를 계속 위험에 빠뜨리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남은영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사회적 위험과 국민 인식: 정책적 함의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성장지상주의에 빠져 일상적 복지와 안전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라고 진단했다. 이를테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사회적 안전망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절대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부양의무제도 등 까다로운 여러 조건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로 밀려난 빈곤층은 17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보살핌’의 부재도 갈등의 주요 원인이다. 여성의 경제 참여가 늘면서 ‘돌봄’을 가정이 해결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도 국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복지를 축소하고, 이를 가정에 넘기려 한다. 우리의 복지 지출은 지난해 기준으로 GDP의 10.4%에 불과하다. OECD 평균(21.6%)을 한참 밑돈다. 빈곤, 보육, 노인 돌봄을 둘러싼 갈등은 이런 상황에서 빚어지고 있다.

심각한 고용불안도 갈등을 부추긴다. 우리 실업률은 3.3%로 OECD 평균(9.1%)보다 낮다. 다만 고용률(54.2%)은 OECD 평균(65.0%)보다 낮다. 임시직·비정규직이 늘고 있는 데다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만성적 취업포기자가 많기 때문이다.

고용불안은 생계를 위협한다. 국민 5명 중 1명은 빚에 시달리고 있고, 10명 중 1명만 겨우 저축을 한다. 10명 중 7명은 소득을 전부 생계를 유지하는 데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의 열쇠는 ‘신뢰’=갈등의 심화는 신뢰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국민 개개인의 삶에 직접 개입하면서 사회통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사연의 2012년 조사에서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은 ‘국회’였다. 이어 사법부(법원), 검찰·경찰, 행정부였다.

신뢰가 두터워지면 갈등은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봉합될 수 있다. 보사연 정해식 부연구위원은 ‘사회통합의 결정요인’ 보고서에서 사회통합 증진 방법을 이렇게 제안했다. “법을 어기면 벌을 받고,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으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과 규정이 만들어지며,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면 국가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구성원에게 심어줄 때 사회통합은 증진된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