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 역명 확정·고시한 朴 시장, 사실 파악 못한 채 책임 회피만… “봉은사역명 제정 몰랐다”

입력 2015-03-25 02:43 수정 2015-03-25 19:07
서울시 강남구교구협의회 관계자들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청 간담회실에서 봉은사역명을 확정·고시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봉은사역명 논란과 관련해 객관적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는 한국과 강남을 대표하는 역명을 정하면서 회의록조차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 시장은 24일 서울시청에서 김인환 강남교구협의회장, 윤성원 삼성제일교회 목사, 박명수 서울신대 교수,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신상인 성은교회 장로, 공주택 개포동교회 집사 등 교계 인사 6명과 만난 자리에서 “이미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 코엑스를 병기(倂記)하고 있다. 9호선과 이중으로 하면 혼란스럽지 않겠냐”고 했다. 삼성역에는 무역센터가 병기돼 있는데, 코엑스로 잘못 알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시장은 “봉은사역명이 정해진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역명제정 과정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봉은사 주지인 원학 승려로부터 지난해 2월 역명 선정을 요청받고 긍정적 반응을 보인데다, 같은 해 12월 자신이 직접 봉은사역명을 확정·고시까지 한 것에 비춰보면 설득력이 거의 없다.

김 회장은 “코엑스는 1년에 5000만명이 드나들고 도심공항과 출입국관리소도 있는 곳”이라며 “역사적인 아셈과 G20정상회의도 열린 곳인데 일개 사찰인 봉은사로 역명을 정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신 장로도 “코엑스는 외국인들이 꼭 오고 싶어 하는 한류의 중심지로, 세계 어디에서 보더라도 강남의 중심”이라며 “역명으로 결정된 봉은사는 역사성이 훼손된 곳이었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지명위원회가 객관적 절차를 거쳐 역명을 제정했다”면서 “서울시장도 지명위원 선출권한만 있지 의결권은 없기 때문에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봉은사역명 변경에 대해서도 “역명을 바꾸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며, 그럴 경우 더 큰 갈등이 온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공 집사는 “지명위원회는 자문기구일 뿐 결정권자는 서울시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고 몰아붙였다.

배석한 윤종장 서울시 교통기획관은 “삼성역에 무역센터를 병기하고 있기 때문에 봉은사로 가는 게 좋다고 해서 봉은사역으로 정했다”면서 “봉은사역명을 바꾸려면 삼성역에서 무역센터를 빼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 집사는 이에 대해 “젊은 친구들의 90% 이상은 무역센터라는 말을 쓰지 않고, 외국인들도 무역센터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한다”며 “삼성역에 무역센터를 병기하는 것과 코엑스역명 사용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박 시장은 윤 교통기획관에게 역명 변경이 가능한지와 지명위원회 회의록 유무를 물었다. 윤 교통기획관은 “봉은사역명을 변경하려면 강남구청에서 주민의견을 수렴한 뒤 서울시에 역명변경을 요청해야 한다”면서 “지명회의록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억주 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은 “서울시가 중요한 역명을 결정하면서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책임행정’ ‘투명행정’과는 거리가 먼 행태”라고 질타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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