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탈을 쓴 악마, 14년간 두 친딸 성폭행·추행… 언니는 고통 속 지난해 자살, 동생은 투신기도

입력 2015-03-25 02:16

지난달 6일 오후 5시, 20대 여성 A씨는 서울 한남대교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지만 머릿속은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했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탈을 쓴 ‘악마’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살 터울 언니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갔다. 코끝으로 흘러내린 눈물이 차가운 강바람을 타고 허공에 뿌려졌다.

언니를 죽인 아버지(54)가 멀쩡히 잘 먹고 잘 사는 게 분했다. 난간 잡은 손을 막 놓으려던 순간 경찰관 두 명이 나타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딸이 자살하려는 것 같다’는 어머니의 신고로 출동한 한남파출소 육영민(33·여) 순경과 박윤업(27) 경장이었다.

경찰에 구조된 A씨는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놨다. “그 악마 때문에 언니가 죽었어요. 나는 이렇게 힘든데 그 악마는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는 게 너무 분해요.”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14년간 벌어진 ‘인면수심’의 범죄가 차츰 드러났다. 아버지는 1994년 당시 다섯 살이던 큰딸을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이 놀이는 아빠와 하는 병원놀이”라고 속였다. 어린 나이에도 이상했는지 친할머니에게 “아빠가 자꾸 나를 만진다”고 했지만 “이상한 소리 말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학교에 들어가 성교육을 받은 큰딸은 아버지에게 “추행하지 말라”고 항의했다. 아버지는 그런 딸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고아원에 보낸다”고 을러댔다. 그는 2007년까지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지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악마의 손길은 둘째 딸에게도 이어졌다. 아버지는 A씨가 열한 살이던 2001년부터 3년 동안 성추행을 일삼았다. 큰딸을 성폭행하며 “자꾸 반항하면 동생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2006년 부부가 이혼하며 자매는 어머니를 따라 갔지만 아버지는 이후에도 1년간 수시로 큰딸을 찾아가 성폭행했다.

큰딸은 2010년 어머니에게 그동안 있었던 끔찍한 일을 털어놨다. 어머니는 자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너무 미안하다. 내가 우리 딸들한테 먼저 물어보고 말할 수 있게 해줬어야 했는데….”

큰딸은 4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과거’를 지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5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숨지기 1년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신의 사연을 적어 보냈다고 한다. 사연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절대 자책하지 마세요.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처음 상담 선생님께 제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저 또한 그 사실이 의심스러웠습니다. 혹시 내 잘못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동생마저 그 뒤를 따르려 했다.

경찰은 A씨 아버지를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성폭력 범죄는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데 ‘우리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세상에 알려 달라’는 A씨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고 전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