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 일본대사관(대사 사사에 겐이치로)이 홈페이지에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창조했다”는 홍보 동영상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의 ‘전후시대의 국가건설: 책임 있는 파트너로서의 일본(Nation Building in the Post War Era: Japan as a Reliable Partner)’ 동영상을 보면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은 경제를 재건했고, 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을 창조하기 시작했다”고 돼 있다.
이어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을 체결해 국제사회로 복귀한 뒤 1954년부터 아시아에 대한 원조를 시작했다”면서 일본이 아시아에 제공한 공적원조(ODA)를 열거했다. 한국의 포항제철, 중국 베이징-칭다오 간 고속도로,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항만, 인도의 철도 등 화면을 보여주며 일본의 ODA가 아시아 국가들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했고,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았다고 자화자찬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지하철 1호선, 소양강댐 건설 사진도 포함됐다.
2분 분량의 이 동영상은 일본 외무성이 2월 5일자로 제작했으며 유튜브로 연결돼 인터넷으로 전 세계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아시아 각국에 대한 일본의 원조를 집중 부각한 이 동영상은 영어는 물론 한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10개국 언어로 제작됐다. 이날 밤 현재 유튜브에는 720여명이 이 동영상을 시청한 것으로 돼 있다.
동영상 후반부 1분가량은 일본의 평화유지활동(PKO)과 아프가니스탄 재건 노력 등을 소개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해 엄청난 고통을 주고 파괴를 자행한 사실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이 동영상만 볼 경우 일본이 ‘아시아의 구세주’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동영상은 경제개발 지원국가라는 점을 부각시켜 전범 국가라는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를 은폐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 외무성이 제작한 이 동영상이 주요국 대사관 중 유독 주미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만 올려진 것은 다음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미국 방문을 홍보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 소식통은 “아베 총리를 비롯한 현 일본 지도층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인식과 역사의식이 얼마나 천박한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이 소식통은 “다음 달 29일 워싱턴 방문기간 중 사상 최초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서는 아베 총리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생략한 채 아시아에서의 일본 역할을 강조하려는 속내가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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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아시아 평화·번영 창조했다”… 주미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동영상 도발
입력 2015-03-25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