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내유보금 503조원 제대로 흐르게 해야

입력 2015-03-25 02:50
기업에는 돈이 넘치고 가계는 빚에 허덕이는 것이 한국경제의 현실이다. 불균형의 정도는 심각하다. 24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 상장사 96곳의 2014회계연도 재무제표(개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사내유보금은 503조9000억원에 달했다. 1년 전에 비해 37조630억원(8.1%)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부채는 67조67000억원이 증가한 1089조원이었다. 기업의 이익과 가계의 소득 격차가 얼마나 큰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유보금은 영업 등으로 번 소득이 기업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남아 있는 돈이다. 일부 투자금이 섞여 있지만 유보금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돈이 기업 안에 고여 있다는 의미다. 대개의 경우 배당 성향이 낮은데 기인하나 번 것에 비해 임금 인상에 인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 입장에서야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비한다는 목적이겠으나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계부채가 급증해 내수 침체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사내유보금이 쌓여 투자 감소 현상까지 심화되면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정부가 기업의 돈을 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유인책을 폈으나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기업소득환류세제는 과세 대상에서 이것저것 빼주다 보니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다. 근로소득증대세제도 마찬가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직접 임금인상을 촉구했지만 기업들은 ‘불가’라고 답했다.

기업이 돈을 풀게 하기 위해서는 규제완화와 노동구조 개혁 등 기업하기 좋은 여건이 조성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가 쥐어짜기 식으로 억지로 끌어내려다가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업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자발적 움직임이 없거나 정책이 잘 먹혀들지 않으면 다른 수단을 써야 한다.

우선적으로 이명박정부 때 내린 법인세율을 환원하는 한편 경쟁제한 행위 감시 강화, 엄정한 세원관리 방안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불가피하며 국민들도 환영할 것이다. 기업은 유보금 선순환이 사회적 책임 이행이라는 명분은 물론 궁극적으로 기업의 실리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