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이형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입력 2015-03-25 02:42

수년 전 일간지에 연재됐던 유명 만화가의 만화 일부다.

꼬마 감자가 엄마 감자에게 “엄마, 나 감자 맞아?”라고 물었다. 엄마 감자는 “당근이지!”라고 답했다. 그 길로 꼬마 감자는 가출했다. 엄마 감자가 자기보고 ‘당근’이라고 말하자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출을 했다가 돌아온 꼬마 감자가 할머니 감자에게 다시 물었다. “할머니, 나 감자 맞아?” 경상도 출신의 할머니 감자는 “오이야(오냐)”라고 대답했다. 그 길로 꼬마 감자는 또 다시 집을 나가고….

우리를 웃게 만드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정체성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과 사명을 지닌 존재인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책임과 권리를 지닌 존재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삶의 보람을 잃어버린 채 공동체에 꼭 필요한 존재로서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민으로 택하셨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중략)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뒤에는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며 백성들이 품고 있어야 할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심어주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년 동안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우상을 숭배하며 갖은 죄악에 빠져 살다가 바벨론에서 수십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다시 그들의 마음에 정체성을 심어주셨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중략)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장)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장)

예수님과 사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시시때때로 일깨워주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되었다고 선포하셨다(요 1:12, 3:16, 11:25).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도 말씀하셨다(마 5:13∼14).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간주되었다고 일깨워줬다(갈 2:16). 그리고 이 땅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명자라는 사실을 선포했다(행 1:8). 아울러 우리로 하여금 신앙적, 윤리적, 사회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전하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점도 깨우쳐줬다(고전 3:16).

사도 베드로 역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는데 있어서 정체성을 강조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요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이웃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과 사도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정체성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로서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거룩함을 드러내자.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자랑하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자.

이형원 교수 (침례신학대 신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