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동백꽃과 쫄깃·통통 주꾸미의 유혹

입력 2015-03-26 02:10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숲에 우뚝 선 동백정이 서해바다를 배경으로 황홀한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오력도가 더해져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지난 21일부터 동백나무숲 일대에서 주꾸미 축제가 열리고 있다. 산란기를 앞두고 잡힌 오동통한 주꾸미가 춤을 추듯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 모습.
지난 21일부터 동백나무숲 일대에서 동백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 동백꽃.
꽃샘추위가 간간이 봄기운을 막아서지만 바닷바람이 한결 싱그럽다. 매섭던 기운 대신 상큼 짭짤한 봄 맛이 잔뜩 실려 있다. 이 때쯤 충남 서천의 서해바다 깊은 곳에서 봄의 전령이 꿈틀댄다. 싱싱하고 쫄깃쫄깃하면서 오동통통한 주꾸미가 봄 맛 잔치 준비로 분주하다. 주꾸미가 올라오는 바닷가에는 동백꽃이 한창이다. 봄 맛, 봄 내음의 유혹 따라 미식가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서천으로 가보자.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다. 주꾸미는 일년 내내 잡히지만 산란기(5∼6월)를 앞둔 봄(3∼4월)에 가장 맛있어서 생긴 말이다. 이 시기 주꾸미의 머리 속에 쌀밥처럼 가득 찬 뽀얀 알이 감칠맛을 더한다. 주꾸미는 5월 이후엔 깊은 바다로 이동해 잡히는 양도 적고 살이 질겨져 맛도 떨어진다.

주꾸미는 다리가 여덟 개로 팔완목(八腕目)에 속한다. 문어, 낙지와 크기만 다를 뿐 모습은 비슷하다. 짧은 다리는 꽃잎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다리의 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낙지와 문어는 물 밖에 나오면 몸통을 가누지 못해 흐느적거리지만 주꾸미는 다르다. 물 밖에 던져 놓으면 잠시나마 벌떡 일어서기도 한다.

필수아미노산, 불포화지방산, 타우린, 비타민B2, 철분 등이 풍부한 주꾸미는 봄철에 생기를 불어넣는 영양식일 뿐 아니라 다이어트식이다. 특히 먹물에 들어있는 타우린 성분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스태미너에 좋다. 심장 기능강화와 시력 감퇴를 막으며 해독 역할도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면서 주꾸미 몸값이 껑충 뛰었다. 위판장 낙찰값만도 1㎏(12∼15마리 정도)에 3만원을 웃돈다.

이맘때면 서천 홍원항 어민들은 봄 바다에서 나기 시작한 힘 좋은 주꾸미잡이로 분주하다. 서천을 비롯해 보령, 서산, 태안 등 서해안에서 주꾸미 잡는 방법은 특이하다. 수컷은 그물로 끌어올려 잡지만 산란을 앞두고 알이 꽉 찬 암컷은 소라껍데기로 잡는다. 긴 줄에 1m 간격으로 주렁주렁 달아놓은 소라껍데기에 둥지를 틀기 때문이다. 어부들은 하루나 이틀에 한번 바다로 나가 소라껍데기 속에 웅크리고 있는 주꾸미를 끄집어내기만 하면 된다.

갑판으로 끌려 올라온 소라껍데기 속에서 주꾸미가 다리를 뻗어 몸을 빼낸다. 순간 어민들은 갈퀴 끝을 소라 안에 집어넣어 주꾸미를 낚아챈다. 이런 채취방식이 ‘소라방’이다.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가 있다가 ‘아닌 밤중에 날벼락’으로 줄줄이 엮여 나온다. 바닥에 떨어진 주꾸미는 여덟 개 다리에 힘을 모아 ‘벌떡쇼’를 선보인다.

홍원·마량 앞바다는 주꾸미가 좋아하는 갯벌과 모래가 반쯤 섞여 있어 전국에서 주꾸미 어획량이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힌다. 주민들은 “서천 주꾸미의 맛 차이는 갯벌에서 난다”며 “마량 앞바다의 갯벌은 미네랄이 풍부해 이곳 주꾸미의 맛이 뛰어나다”고 자랑한다.

이름도 촌스럽고 다소 볼품없는 주꾸미가 미식가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특산물 홍보를 위한 축제들이 봇물을 이루면서 겨울과 봄 사이 이렇다할 해산물이 없던 틈새철의 주자로 주꾸미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날것으로 먹거나 데쳐먹는 것이 고작이던 요리법도 전골, 볶음, 샤브샤브 등으로 개발돼 겨우내 무뎌진 입맛을 되살려주는 봄의 대표 주자로 대접받고 있다. 이 가운데 샤브샤브가 맛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냉이 쑥갓 등 봄나물을 넣어 끓인 육수에 주꾸미를 살짝 익혀 초장에 찍어 먹으면 구수한 살이 입안에서 녹는다. 다리는 살짝 데쳐 먹지만 알이 들어있는 머리는 먹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익히는 게 비결.

갖은 야채를 넣고 양념해서 볶은 주꾸미볶음과 육수에 야채를 넣고 끓인 주꾸미전골도 미식가들의 단골 메뉴다. 주꾸미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워먹는 맛도 그만이다. 샤브샤브는 맑은 국물, 전골은 매콤한 국물 맛이 좋다. 알은 완전히 찬 것보다 조금 덜 차야 단단하고 맛있다.

맛이 있는 고장에서는 볼거리도 관심이다. 마량리 서천화력발전소 뒤편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169호다. 1965년 4월에 지정됐다. 언덕의 중층누각인 동백정은 낙조와 동백꽃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명소다. 동해바다 못지않은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이 넋을 빼놓는다. 특히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 일몰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옛날 어느 장수가 바다를 건너다 빠뜨린 신발 한 짝이 섬이 됐다는 오력도가 동백정의 붉은 기둥 사이에 적당한 여백을 두고 자리잡고 있어 더욱 환상적이다. 해가 수평선과 황홀한 입맞춤을 하기 전 동백정 앞바다는 온통 붉은 세상으로 물든다.

동백숲의 역사는 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마량의 수군첨사가 꽃 뭉치를 증식시키면 마을에 웃음꽃이 핀다는 꿈을 꿨다. 바닷가에 나가 보니 꿈에서 보았던 꽃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 아닌가. 그 꽃을 가져다가 심었더니 그게 바로 동백이었다는 전설이다. 마량리 동백숲은 그 후로 마량리 바닷가의 방풍림 역할을 하면서 봄날 가장 화려한 생을 위해 꽃을 피운다.

남해 바닷가와는 달리 이곳 동백나무는 거센 바닷바람 때문에 키가 크지 않다. 대신 가지가 옆으로 넓게 뻗는다. 수령 500년의 동백나무 80여 그루가 뿌리를 내린 동백숲 잔디밭에 송이째 떨어진 동백꽃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땅 위에서 또 한 번 붉게 피어난 동백꽃이 환상의 꽃길 터널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동백나무숲 일대에서는 매년 동백꽃 개화시기와 주꾸미 철에 맞춰 동백꽃·주꾸미 축제가 열린다. 지난 21일 막을 올린 제16회 축제는 다음달 3일까지 계속된다. 이번 축제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어린이 주꾸미 낚시체험, 주꾸미샤브샤브체험, 문화관광해설사와 서천관광 구석구석 알기, 어부아저씨의 내 맘대로 깜짝 경매, 전통놀이체험, 보물찾기 이벤트 등 다채로운 행사를 곁들여 관광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서천=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