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쉬는 첫째, 셋째 주일은 공장 근처 성산감리교회에 출석하곤 했다. 이 교회 윤병조 청소년 담당 목사님은 후일 나의 결혼식 주례도 맡아 주셨는데 설교를 들으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이 좀 소홀해졌고 1979년 10·26사태와 유류파동이 가져온 파장은 23세 청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로 돌아왔다. 하루아침에 일거리가 모두 없어지고 연 60%가 넘는 사채 이자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었다.
결혼 후 난 집 근처 독산동 가리봉교회를 나가곤 했는데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심방을 요청했다. 집으로 오신 목사님께 지금 내가 처한 사업의 위기를 소상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헤쳐나갈 지혜를 알려주십사고 부탁드렸다. 목사님은 우리 부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요셉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가 누명까지 쓰고 옥에 갇히며 갖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님도 지금 매우 힘들겠지만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뿐만 아니라 더 큰 사업가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새벽부터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하셨다.
워낙 다급했던 나는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여 100일 새벽기도를 작정했다. 아내도 함께 기도하자고 손을 이끌었다. 매달 이자로 50만원, 봉급으로 30만원, 운영비 등 최소 100만원이 남아야 돌아가는 상황인데 대안이 없었다. 모든 것이 일감이 없어 생긴 일이었다. 공장이 가동되도록 일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한 지 한 달이 가까이 되었을 때쯤 처남이 산에서 산삼을 3뿌리 캤다며 한 뿌리를 내게 가져왔다. 갑자기 이 산삼을 D탄좌 이 과장에게 갖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과장을 만나 처가에서 산삼을 캔 것을 가져왔는데 갑자기 이 과장이 생각나 선물로 가져왔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이 귀한 것을 내가 왜 받느냐”며 사양했지만 나중엔 내 정성이 고맙다며 기쁘게 받아주었다. 난 이 선물을 통해 뭔가 대가를 바라진 않았다. 그분의 얼굴이 떠올라 선물하면 좋겠다고 느껴져 행동에 옮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새벽 제단을 쌓고 있는 내게 주의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참이나 지난 후 이 과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게 제품 도면을 한 장 주면서 이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는 말에 나는 도면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대기업에서나 만드는 아주 큰 판스프링이었다. 우리 회사는 시설도 없고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 과장이 다시 물었다. “도면대로 제작할 수 있습니까?”
일거리에 다급해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만들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일단 400개를 만들 견적서를 보내고 만들어달라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지만 이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 납품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밤잠이 오지 않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튿날부터 서울시내에 있는 큰 스프링 공장을 모두 찾아보았다. 이틀이 지날 때쯤 구로동 독립산업 맞은편에 있는 신흥스프링이라는 회사에 가서 도면을 보여드렸더니 똑같은 샘플을 가지고 왔다. 똑같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본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는 분이 아니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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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25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