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내는 동안 집 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유심히 보았다. 두 팔을 뻗어도 안을 수 없는 몸통 큰 나무였다. 그것은 나무 안에 또 나무가 숨어 있는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비밀스러웠다. 나는 외출하고 들어올 때마다 그것을 살펴봤지만 늘 그대로였다.
어릴 때 나는 나무가, 영원히 산다고 믿었다. 죽은 나무를 못 본 데다 만약 나무가 죽어도 땅에 뿌리를 내린 채 서 있다면 그건 정말 죽은 게 아닐 테니까.
학교에서 자연과학을 배우고 모든 생명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나무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조금 슬펐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글을 읽었다. “대체로 빨리 자라는 나무는 수명이 짧고 천천히 자라는 나무는 수명이 길다. … 브리스틀 콘 소나무 살아서 5000년 죽어서 7000년, 합쳐서 만 년이 넘게 사는 나무로 1년 동안 내리는 강수량이 고작 300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고산지대 사막에서 산다.” 어쩌면 나무는 우리가 모르는 시간과 공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로울 때면 나는 나무를 찾았다. 낯선 나라에서 그 나무는 긴 시간 몸을 뒤틀어 위가 아닌 옆으로의 시간을 살았겠지. 그곳이 비록 사막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 없이 지내는 나날이 사막처럼 느껴졌다. 집 앞 나무는 유일한 내 친구였다.
하지만 그 겨울, 폭우가 이어졌고 나무 몸통이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서서히 말라갔다. 아무도 이 일을 슬퍼하지 않았고 떨어진 나뭇잎을 쓸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비와 봄비가 교차하며 내렸다.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봄바람 불던 3월이었다. 나는 부서진 나무의 몸통을 찬찬히 살펴보다 가지에 난 새 잎사귀를 발견했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다시 살아나는 이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혼잣말을 되뇌었다.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희망을 바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느리게 자라는 나무
입력 2015-03-25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