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호스피스 사회’ 아직 먼 길… 말기 암환자 보호자들 조사로 본 현주소

입력 2015-03-24 02:25 수정 2015-03-24 10:32
“만약 어머님이 또 그렇게 된다면…. 병원에서 ‘말기암 환자라 어렵습니다’ 하면 바로 모시고 나올 것 같아요. 암병동에서 시간 보내지 않고 서둘러 호스피스로 갈 겁니다.”(호스피스병동에서 부모를 임종한 자녀)

행복한 죽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호스피스병동에서 부모를 임종한 자식들의 소회를 기록한 보고서(‘호스피스 완화의료 활성화 방안’)가 23일 공개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지난해 호스피스병동과 일반 암병동에 말기 암 가족을 입원시킨 보호자 250명(각 125명)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했다. 호스피스병동 보호자 93.6%(117명)는 “(이런 상황이 다시 닥치면) 호스피스를 택하겠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호스피스병동에서 부모를 떠나보낸 자녀 4명의 심층 인터뷰도 보고서에 담았다. 네 사람은 각각 폐암 피부암 대장암 신장암으로 아버지 또는 어머니를 잃었다. 이들은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병상을 늘리고 정보제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개선점도 지적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심층 인터뷰 가운데 각자 ‘임종 경험’을 소개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한 응답자는 “○○병원에서 임종실이 어떤 공간보다 좋았다”고 했다.

“세면대와 소파가 있고, 가정집 침실처럼 꾸며놨어요. 어머님 종교에 맞는 음악을 계속 틀어주시고요. 임종실에서 3∼4시간 있다가 심장이 안 뛰는 것 같아 담당자를 불렀는데, 그분이 이때가 딱 넘어가시는 단계니까 가족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만져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끼리 있었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그냥 울고 끝냈을 텐데, 가족과 함께 따뜻하게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른 응답자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가족들도 편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아버님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연구진은 호스피스병동 보호자 125명에게 ‘(호스피스가) 환자 및 보호자의 마음을 편안하고 안정되게 해주는가’고 물었다. 76.8%가 ‘그렇다’고 답했다. ‘긍정적 생각을 갖게 해주는가’에도 80.0%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 암병동 환자의 보호자 125명은 두 질문에 각각 56.0%와 56.8%만 ‘그렇다’고 답했다.

◇법적 요건 못 갖춘 호스피스도 상당수=모든 보호자가 호스피스에서의 임종 경험에 만족한 것은 아니다. 한 응답자는 사별의식 같은 건 없었다고 했다. “임종실이 아니고 그냥 입원실에 있었습니다. 돌아가실 때가 다 됐으니까 빨리 가족만 오라고, 그 얘기만 해줬어요. 하고 싶은 말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환자 사망 후 시신 처리가 보기 좋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아버지가 계신 옆방에서 곡소리가 나더니 조금 이따가 사람들이 와서 시신을 병원 이름 적힌 하얀 천으로 덮고 안전벨트처럼 넙적한 플라스틱끈으로 묶어 끌고 내려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분명히 숨을 쉬던 분인데 저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나.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임종 기억이 극과 극인 이유는 법적 기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호스피스 시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호스피스 전문 의료기관 56곳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이 중 12곳은 5인실에 남녀 환자를 함께 입원시키거나 가족실·목욕실·상담실을 호스피스병동 밖에 설치하는 등 법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환자 2명당 1명씩 전담 간호사를 배치토록 한 규정을 안 지킨 곳도 여럿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우수 기관’은 4분의 1인 14곳에 불과했다. 병상이 적고 대기시간이 긴 점은 고질적 불만사항이다. 현재 호스피스 병상은 전국적으로 939개에 불과하다. 10개 이하의 병상을 갖추고 호스피스병동을 운영하는 시설도 9곳이나 된다.

◇호스피스에 대한 거부감도 상존=연구진은 일반 암병동에 있는 말기 암 환자의 보호자 4명도 심층 인터뷰했다. 호스피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한 보호자는 ‘환자가 더 불행해질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환자가 거기 있다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남은 생을 사는데 굉장히 불행할 것 같아요.”

“호스피스 얘기가 나왔었는데, 자식이 다섯이나 되니 일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보자고 했어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인식은 아직 사회 전반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호스피스=죽음’으로 받아들여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기 암 환자와 보호자가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예민한 성격을 가진 환자를 호스피스로 옮겼더니 불안감이 커져 증세가 악화됐다’는 경험담이 있다. 끝까지 치료하는 게 자식의 도리이고 효도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호스피스병동에서는 호전될 가망이 없는 병을 치료하기보다 주로 통증을 완화하는 처치를 한다. 종교활동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음악·미술 활동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대학병원에서는 모르핀 투여할 때 기본이 5라고 하면 3까지만 (주사를) 놔줬대요. 그런데 여기(호스피스)는 아프다며 5까지 놔달라고 하면 무조건 놔주는 걸로 (약속을) 했죠.”

◇7월부터 건보 적용되지만…=지금까지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돈이 많이 들었다. 한 보호자는 “2인실을 이용했더니 하루 50만원 정도 비용이 나왔다”고 했다. 앞으로 이런 경제적 부담은 줄어든다. 7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1인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간병 서비스는 제한적으로 혜택이 주어진다. 통증 관리와 상담 서비스도 계속 환자와 보호자의 부담으로 남는다. 가정 호스피스에 대해서는 7월부터 건보 적용 시범 사업을 실시한다.

호스피스를 이용해본 보호자들은 병실 환경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6인실로 갑니다. 거기서 (보호자가) 잠자기는 진짜 힘들거든요.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곳이니까 일반 병실과는 다른 체계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보고서를 작성한 최영순 연구위원은 “현재 호스피스는 암관리법에서 다뤄 말기 암 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 다른 말기 질환자로 확대하려면 별도 법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국민본부가 발기인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