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에서 한우 250마리를 키우는 민경천(58)씨는 겉보기에는 ‘기업농’이지만 실속은 없다. 지난해까지 매달 사료값만 2300만원씩 들어가는데 소값이 떨어지면서 매달 750만원의 적자를 봤다. 지금도 쌓여 있는 사료 빚만 1억원이 넘는다. 민씨는 결국 여러 방도를 알아본 끝에 올해부터 옥수수, 쌀겨, 보릿겨, 버섯비지 등을 사다가 직접 사료를 만들어 한우를 키우고 있다. 이렇게 하니 사료값 부담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민씨는 “사료 원료인 옥수수값이 전 세계적으로 폭락하고 사료 운송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 가격도 떨어지는데 사료값은 요지부동”이라며 “축산농은 적자에 허덕이고 사료 회사만 배를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씨 같은 축산농가들의 사정은 정부의 지원 확대 등으로 요즘에 그나마 나아진 것이다. 2008년 사료값이 폭등할 때 축산농 자살이 잇따랐다. 그해 5∼6월에만 축산농 5명이 사료값 부담에 목숨을 끊었다. 사료가 없어 소, 돼지가 굶어죽는 사태도 속출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카길애그리퓨리나, CJ제일제당, 대한제당 등 11개 대기업 사료 제조·판매업체들은 담합해 가격 인상에 열을 올렸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원료값 상승을 핑계로 그해에만 5차례나 가격을 올렸다. 소, 돼지의 경우 사료값이 전체 생산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다. 이들 회사가 서로 짜고 치면서 수천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는 것은 그만큼 축산농가가 지지 않아도 될 부담을 졌다는 의미다.
이번 사료 담합은 가담 회사만 10개가 넘고, 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등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공정위 조사 착수 전까지 리니언시(자진신고 감경제도)를 한 회사도 없었다. 통상 담합이 대표이사 등 최고위급 임원의 묵인이나 소극적 참여 아래 이뤄진 것과 달리 이번에는 사장이 가장 먼저 담합에 합의했다. 사장급들은 자신들의 회사가 보유한 골프장에 각사 사장급들을 초청해 골프를 치면서 담합을 일삼았다.
카길애그리퓨리나 등 매출 상위 업체가 가격을 인상하면 2∼3일 간격을 두고 나머지 업체가 슬그머니 이를 따라갔다. 또 소, 돼지, 닭 등 축종별로 가격 인상폭을 각 사별로 다르게 해 개별 축종 사료 가격만 보면 담합이 아닌 것처럼 꾸미기까지 했다. 원료 가격이 내렸을 때는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농협사료가 가격을 인하하면 이보다 인하율 수준을 작게 하자고 합의해 실행에 옮겼다.
11개사의 이런 조직적인 담합의 원천은 각종 친목 모임이었다. 이들은 사장부터 실무자까지 인맥, 학맥, 지역 등을 망라해 10여개가 넘는 각종 모임을 조직해 친목을 가장한 담합을 일삼았다. 카길애그리퓨리나, 대한제당, 삼양홀딩스 최고위급 임원들은 공정위 조사가 진행되자 진술 거부 등 조사 방해까지 저질렀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23일 “대부분 축산농들은 사료회사들의 담합에 물증만 없었지 심증은 모두 갖고 있었다”면서 “11개 회사는 담합 당시 축산농 자살 사건에 대해 이제라도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윤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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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24 02:56 수정 2015-03-24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