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서울 지하철 9호선을 이용하는 목회자나 성도들은 매일 봉은사로 들어가는 겁니까.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23일 서울 코엑스 사거리에 위치한 봉은사역 공사현장. 양병희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이 역 입구에 붙어 있는 ‘봉은사(Bongeunsa)’ 간판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9호선 역명 간판에는 ‘역’자가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봉은사’란 명칭만 나온다. 간판 색깔도 고동색이어서 마치 사찰 표지판처럼 보인다.
양 대표회장은 “2008∼2010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부탁으로 교회에 투표소가 설치된 적이 있는데 ‘승려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게 굴욕적’이라며 불교 쪽에서 종교편향 논리를 폈고 결국 폐지됐다”면서 “그때 상황이 지금 똑같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불교계는 ‘자신이 신봉하지 않는 종교적 상징물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헌법에 명시돼 있다’며 헌법소원까지 냈다.
양 대표회장은 한교연 임원 등 20여명과 함께 지하 1층 대합실로 내려갔다. 벽면에 붙어 있는 주변 안내도에 봉은사가 200m 떨어져 있다고 표시돼 있었다. 양 대표회장은 “친일의 최선봉에 섰던 일개 사찰이 뭐가 대단하다고 공공 시설명으로 붙이느냐”면서 “만약 역명이 바뀌지 않으면 시민단체와 연대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 2층 깊이의 지하철 역사는 개찰구, 에스컬레이터, 화장실 등 대부분 시설이 완공됐다. 내부 도색, 청소 등으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에스컬레이터 보수 작업을 하던 한 인부는 “이쪽에 코엑스도 있는데 역명을 봉은사로 정해서 주민들의 말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벽면을 고치던 다른 인부도 “개신교와 천주교에서 ‘왜 불교 편만 드는 것이냐’는 말이 나올 만하다”고 말했다.
역에는 7개 출구가 있다. 1번 출구는 봉은사 방향, 7번 출구가 코엑스 쪽이다. 하지만 유독 코엑스 쪽 출구만 공사 중이라 칸막이로 막아 놨다.
역 부근에서 만난 시민들도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서울 잠원동에 거주한다는 천주교인 엄모(49)씨는 “앞으로 다수의 외국인이 이곳을 이용할 텐데 발음도, 의미 설명도 어려운 봉은사를 역명으로 했다니 정말 상식 이하의 결정”이라면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한국의 랜드마크에 사찰 이름을 붙이느냐. 박원순 시장이 사심을 내려놓고 50년을 내다봤다면 절대 이런 이름은 붙이지 못했을 것”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역 주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모(62)씨는 “주민 대부분은 역명이 촌스럽고 거부감이 든다며 싫어한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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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24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