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아빠를 부탁해’는 ‘딸들을 부탁해’?… 방송인 지망생 ‘얼굴 알리기’ 논란

입력 2015-03-24 02:42

[친절한 쿡기자] 제가 딸이어서 그런가요. 아빠와 딸의 일상을 관찰하는 SBS 새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사진)’가 무척 재밌습니다. 지난 설, 맛보기로 선보인 방송은 21일 정규 편성됐습니다. 내심 “내 판단이 정확했군”하며 뿌듯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가 아빠와 딸의 진솔한 모습을 보려 했다가 엉뚱한 것에 실망했습니다. 바로 딸들의 남다른 희망사항입니다.

스타 4명의 딸은 약속이나 한 듯 방송인을 꿈꿨습니다. 개그맨 이경규의 딸 예림이와 강석우의 딸 다은이는 국내 한 대학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연예인 지망생입니다. 조재현의 딸 조혜정은 배우가 되길 원했고요. 조민기의 딸 윤경이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아나운서를 희망했습니다.

이러니 ‘아빠를 부탁해’가 아니라 ‘딸을 부탁해’라고 프로그램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오죠. 실제로 기사에는 방송의 진정성에 의문을 드러내는 댓글이 주로 달렸습니다.

한 네티즌은 “솔직히 연예인 지망생인 우리 딸을 시청자에게 잘 부탁한다는 게 방송의 본심이 아닌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다른 네티즌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자녀를 쉽게 연예계로 진출시키려는 금동아줄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신인이 TV에 얼굴 한번 비추기 힘든 현실을 생각하면 엄청난 특혜를 받은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스타 자녀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특히 또래나 취업준비생에게는 더 가혹할 수밖에요. “좋은 옷, 넓은 집에 눈길이 가는 건 저뿐인가요”라는 댓글은 큰 공감을 받았습니다.

육아 예능 일색인 요즘 성인 자녀의 등장은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진로가 이미 결정된 스타 자녀가 곧바로 다른 방송에 투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제작진은 집안의 가구로 전락한 가장 아빠를 딸에게 ‘잘 부탁한다’는 간청이라고 방송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아빠와 딸의 서먹한 관계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죠. 저도 바빴던 아빠와 제대로 된 추억을 쌓거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언제였던가 싶더군요.

대한민국 보통의 부녀에게 ‘우리도 한번 친하게 지내볼까’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소소한 관계 개선 비결을 전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송 방향이 아닐까요. 정규 방송이 한번 밖에 나가지 않았기에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초기 시청자로서 본말이 전도되지 않게 방송이 전개되길 기대합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