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두 가지 ‘절’ 문제가 논란이 됐다. 하나는 크리스천인 원희룡 제주지사가 한라산신제에서 절을 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군소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총회 교인들이 리퍼트 주한 미 대사의 쾌유를 빌며 부채춤을 추고 큰절을 한 것이다.
절을 하고 하지 않고는 신앙과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같은 기독교라도 천주교에선 제사를 허용하지만 개신교 신자들 상당수는 제사 대신 추도식을 갖는다. 유교적 전통을 매우 중시하는 회사 선배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한다. 하지만 시제 때 산신에 대한 의식은 미신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오래 전 중단했다. 조상이 아닌 산신령 같은 우상에게 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한라산신제 때 절하지 않은 元 지사
원 지사는 지난 12일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 제단에서 열린 한라산신제에 20여분 늦게 도착했다. 산신제를 집전하는 초헌관(初獻官) 역할도 박정하 정무부지사에게 맡겼다. 원 지사는 제사복을 입지 않았고 절도 하지 않았다. 2012년 제주도 조례가 개정되면서 ‘한라산신제 초헌관은 도지사를 당연직으로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제단에 첫잔을 올린다는 의미의 초헌관은 산신령에게 제주를 잘 보살펴 달라고 기원하며 절을 올린다.
원 지사가 초헌관 역할을 맡지 않은 것을 두고 조례를 어긴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초헌관 역할보다 신앙의 자유가 우선이다. 원 지사는 신앙적 양심에 따라 절을 하지 않았다. 원 지사는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성공기원 한라산신제와 12월 제주도의 시조를 기리는 제사의 초헌관 역할도 하지 않았다. 과거 초헌관을 맡았던 지사들이 있었지만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독실하지 않았다. 초헌관 역할을 하지 않을 거라면 제주지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개신교 신자들은 제주지사가 되어선 안 된다는 논리나 다름없다. 초헌관을 맡지 않았다고 해서 원 지사가 도정을 게을리하거나 제주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상에게 절을 하지 말라는 성경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는 제주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신교 신자들이 상가에서 절을 하는 대신 머리를 숙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형식은 다르지만 추모하거나 기원하는 마음은 똑같다.
원 지사는 행사에 늦게나마 참석하고, 행사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행사를 지켜본 뒤 음식과 술을 나눠 먹는 ‘음복(飮福)’을 함께하는 성의도 보였다. 이는 지혜로운 처신으로 봐야 한다. 행사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 방식으로 지역공동체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적 소신을 지킨 원 지사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대권을 꿈꾸는 원 지사가 기독교계를 의식해 한 행동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해석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더러 학문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좋은 대학에 가려는 속셈으로 공부를 한다고 나무라는 격이다.
도지사의 당연직 초헌관 조례 개정 필요
이번 기회에 지사가 초헌관을 당연직으로 맡도록 한 제주도 조례를 바꾸는 게 옳다. 지방 조례보다 종교의 자유와 신념을 허용한 헌법이 앞선다. 절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신앙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민주적인 사회다.
원 지사가 절을 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교단의 교인들이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위해 부채춤을 추면서 한 절은 과한 느낌이 든다. 어떤 교회연합기구에도 소속되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교단의 행사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차라리 조용히 기도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신종수 편집국 부국장 jsshin@kmib.co.kr
[돋을새김-신종수] 크리스천 원희룡의 소신
입력 2015-03-24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