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임금주도 성장론

입력 2015-03-24 02:10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우리나라를 지배해 온 성장지상주의에서 탈피하려는 거의 첫 시도에 해당된다. 국내외 각종 경제통계를 보면 수출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을 통해 형성된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가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으로 흘러내릴 것이라는 ‘낙수효과’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임금을 높여서 늘어나는 소비가 성장을 이끌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원래 케인스의 임금주도 성장이론에서 비롯됐다. 임금이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비용이지만 노동자로서는 구매력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임금주도 성장이 어떤 조건에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주류 경제학은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임금주도 국면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그렇지만 극심한 임금 불평등의 획기적 완화 정책이 가져올 노동자들의 사기 진작, 사회통합과 같은 인간 마음의 변수를 경제학은 반영하지 못한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이달 말 첫 번째 관문을 앞두고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정한 노동시장 구조개선 대타협의 시한이 이달 말이다. 이 협상의 목표는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 대한 임금과 처우의 차별과 격차를 완화하는 것이다. 기업규모별,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는 이제 ‘임금 카스트제도’ ‘신분에서 (계약이 아닌) 간판으로’와 같은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심각하다.

임금 인상이 성장을 주도하려면 인상 효과가 저소득층에 집중돼야 한다. 그러나 저소득층이 몰려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주들은 임금을 인상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대기업의 노와 사가 기득권을 양보해야 하고, 기업단위를 뛰어넘는 임금결정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기업규모별 임금격차 완화를 위한 노사자율 협의체나 산업별·대각선 임금교섭의 활성화가 그것들이다. 노사정위가 구상하는 상생임금 협력기금의 설치도 과도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매우 어려운 과제들이고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 할 길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