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목숨 앗아간 강화 캠핑장] 비명소리 듣자마자 여덟 살 아이 구해… CCTV에 찍힌 옆 텐트 ‘의인’

입력 2015-03-23 02:20 수정 2015-03-23 18:31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민 박홍(42·컴퓨터 프로그래머)씨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뛰어나가 불길에 휩싸인 옆 텐트로 달려갔다. 화염은 사람 키보다 크게 번져 텐트 한쪽을 완전히 휘감았다. 묵직한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박씨는 너덜너덜해진 텐트를 두 손으로 잡아 걷어냈다. 그 틈으로 여덟 살 남자아이가 빠져나왔다. 마침 뒤따라온 관리인에게 구조한 아이를 맡기고 박씨는 자신의 텐트로 돌아가 가족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딸이 텐트 밖으로 나오자 박씨는 다시 불길에 휩싸인 옆 텐트로 달려갔다. 남자아이 구조를 돕기 위해서였다. 우는 아이를 끌고 안전한 곳에 옮긴 뒤 옷을 벗겼다. 분주한 손길이 다급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씨는 이어 남자아이를 딸에게 맡기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와 불이 붙은 텐트에 뿌렸다. 불길은 이미 텐트의 천막을 다 태우고 넓게 퍼졌다. 세숫대야의 적은 물로는 불길이 조금도 잡히지 않았다. 무기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포기하지 않고 샤워장을 오가며 물을 뿌렸다.

인천지방경찰청이 22일 공개한 인천 강화도 글램핑장 화재 참변 현장의 CCTV에는 구조와 진화에 용감히 뛰어든 박씨의 행동이 모두 담겼다. 박씨는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캠핑 중이었다. 오전 2시13분 아내와 통화를 마치고 잠에 들려는 순간 비명소리를 듣고 구조에 나섰다.

박씨는 “반사적으로 옆 텐트로 들어갔다”며 “처음에는 관리인과 우리 가족만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많은 사람이 진화를 도왔다”고 말했다. 홀로 남겨진 이군에 대해서는 “같은 아버지로서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박씨는 인터넷에서 ‘의인’으로 불린다. 세월호 현장에서 박씨와 같은 사람이 더 많았다면 생존자도 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네티즌은 “사고 현장에서 박씨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박씨가 울음소리를 못 들었거나 구조를 주저했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구조와 진화 과정에서 화상을 입은 박씨는 오전 6시쯤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실에서 3시간가량 치료받고 귀가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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