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어도 배고픈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신념을 받들겠습니다. 밥값 1000원은 이익을 남기려는 게 아닙니다. 부끄러워 말고 떳떳이 숟가락을 들라는 할머니의 배려입니다.”
광주 대인시장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1000원짜리 백반을 팔아온 고 김선자(73) 할머니의 유지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김 할머니는 대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던 지난 18일 “배고픈 사람이 찾아오는 한 식당 문을 닫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김 할머니가 떠난 뒤 장례식장에 모인 2남4녀의 유족과 대인시장 상인들은 각박한 세상에 온기를 전하던 ‘따뜻한 밥상’을 계속 차리기로 했다. 홍정희(65·여) 상인회장 등은 십시일반 식당 운영자금을 모아 김 할머니의 1000원짜리 백반을 계속 팔기로 했다. 끼니걱정을 하는 이들에게 김 할머니가 했던 것처럼 구수한 된장국에 나물 반찬 3∼4개가 딸린 밥상을 정성껏 차려주기로 한 것이다.
홍 회장은 “김 할머니가 숨을 거두기 전 ‘난 당신이 있으니까 천원 밥집 믿고 가. 없는 사람들 배불리 먹게끔 해줄 줄 알고...’라고 하신 마지막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며 “자존심 상하지 않고 배고픔을 덜 수 있는 식당이 김 할머니의 유산으로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가 광주 도심 대인시장 골목에 89㎡(27평) 규모의 식당 문을 연 것은 2010년 8월이다. 당초 죽 집을 운영하려다 1000원짜리 한 장을 받고 쌀밥과 국 또는 찌게, 3∼4가지 반찬을 파는 ‘해뜨는 식당’을 개업했다. 젊은 시절 사업실패로 부도가 나 수년간 고생하면서 돈 없고 배고픈 설움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이 깔려 있었다.
식당이 문을 열자 채소를 팔러 시장에 나온 노점상과 주머니가 가벼운 일용직 근로자 등이 단골손님이 됐다. 소박하지만 할머니의 맛깔스런 손맛과 정성이 버무려진 ‘행복한 밥상’을 1000원이면 언제든 받아들 수 있었다. 손님이 늘수록 적자폭도 커져 김 할머니는 한 달 평균 100만원 정도의 손해를 봤지만 내가 차린 밥상으로 누군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며 오히려 즐거워했다. 자녀들이 보내준 용돈도 모아 부족한 식당 운영비로 보탰다.
김 할머니가 2012년 5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아 항암치료를 받게 되자 식당은 한동안 문을 닫기도 했다. 하지만 대인시장 이웃 상인들과 시민, 지역기업의 도움으로 식당은 이듬해 기적처럼 다시 문을 열었다. 반찬값에 보태라며 몇 만원을 식탁에 몰래 놓고 가거나 쌀 포대와 함께 김치를 담가온 시민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일 가족장으로 광주 시립공원에 안장됐지만 암 투병 중에도 ‘배고픈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은 고인의 숭고한 뜻은 다행히 명맥을 잇게 됐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이례적으로 ‘김선자 할머니 타계에 부쳐’라는 애도성명을 발표했다.
윤 시장은 “할머니께서는 낮은 곳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몸소 실천하셨다”며 “1000원 밥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이요, 가장 배부른 밥상일 것”이라고 회고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1000원 밥상’… 십시일반 온정으로 다시 데운다
입력 2015-03-23 0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