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은 상호 인적·물적 교류 확대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정치·외교 분야에선 후퇴를 거듭해 왔다. 한·일, 중·일 간 과거사 및 영토 문제가 불거지면서 파행이 이어졌다. 매년 갖기로 한 한·중·일 정상회의도 2012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21일 3년 만에 서울에서 개최된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정상회의 조기 개최에 노력키로 하는 등 합의문이 발표된 건 평가받을 만하다.
의견 불일치로 합의문을 내지 못한 2011년 일본 교토, 2012년 4월 중국 닝보 회의에 비하면 의미 있는 진전이다. 북한 핵 문제에 관해 3국 외교장관이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공동 입장을 처음으로 표명한 것도 분명한 성과다. 뿐만 아니라 경제, 인적 교류, 테러대책, 방재, 환경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관계 개선을 위한 3국의 의지가 확인됐다.
하지만 한·중·일 외교장관은 3국 정상회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시기를 특정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하는 정상회의 개최에 필요한 조건들이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의 입장이 강경하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에게 시종일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역사를 바로 보고 미래를 연다’는 뜻의 ‘정시역사 개벽미래(正視歷史 開闢未來)’를 주문했다. 역사 문제 해결 없이는 관계개선도 없다는 통첩이다. 한·일 관계 이상으로 얼어붙은 중·일 관계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관계 정상화의 관건은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의 자세에 달려 있다. 아사히,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들도 역사인식에 대한 3국의 견해 차이로 관계 정상화까지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 전환이 없는 한 3국 정상회의 개최는 물론 관계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는 셈이다. 한편으론 관계 정상화를 외치면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선 “식민지 지배 및 침략의 정의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어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식으로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외교적 결례를 넘어 한·중 양국을 우롱하는 후안무치한 처사다.
아베 총리의 다음달 미 상하 양원 합동연설과 8월 담화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가 두 번의 기회를 통해 진솔한 사과와 반성 등 과거를 올바르게 인식한다면 3국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지만 반대의 경우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 우리로선 지금 같은 비정상적 3국 관계가 유리할 게 없다. 그럼에도 일본을 올바른 역사의 길로 들어서도록 압박할 카드가 우리에게 없다는 게 안타깝다.
[사설] 한·중·일 관계 정상화 아베 총리에 달렸다
입력 2015-03-23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