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국내 무대 그 사실만으로 행복하다”… 국립발레단 객원 수석무용수 김현웅

입력 2015-03-23 02:38 수정 2015-03-23 18:52
발레리노 김현웅이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에서 ‘지젤’을 연습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의 올 시즌 개막작 '지젤' 공연을 앞두고 발레리나 김지영과 호흡을 맞춰보는 모습. 국립발레단 제공
김현웅(34)에겐 ‘한국에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발레리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기량과 한국 발레리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월한 신체조건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발레는 체형이 아름답지 않으면 주역으로 발탁되지 못할 만큼 선천적 조건이 중요하다. 184㎝, 작은 얼굴, 긴 팔다리의 소유자인 그는 ‘타고난 왕자’였다.

중학교 때까지 수영선수였다가 뮤지컬 배우인 삼촌의 권유로 고등학교 3학년에 발레를 시작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2004년 국립발레단에 특채됐다. 한예종 시절 러시아에서 유학하고 해외 콩쿠르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일찌감치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2005년 국립발레단 개막작 ‘해적’에서 해적 콘라드와 노예 알리를 매일 번갈아가며 연기했을 때 관객은 열광했다.

그런데 2011년 술자리 폭행사건이 터졌다. 다퉜던 후배에게 사과하면 끝날 수 있었지만 외부로 알려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국립발레단을 떠나야 했고 6개월 방황 끝에 미국의 명문 워싱턴발레단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가슴은 늘 공허했다. 결국 지난해 초 한국에 귀국한 그는 강수진 국립발레단장과 동료들의 배려로 같은 해 6월 ‘돈키호테’에 출연했다. 3년 만에 복귀한 그는 워싱턴발레단과 국립발레단에서 게스트 프린시펄(객원 수석무용수)로 활동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워싱턴발레단의 러브콜은 사양했다. 국립발레단에 좀 더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22일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25∼29일 공연하는 시즌 개막작 ‘지젤’ 연습에 한창이었다. ‘지젤’은 그가 국립발레단을 그만두기 직전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작품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김현웅은 “국립발레단 게스트 프린시펄로 연간 계약을 맺으면서 정말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면서 “국립발레단에 다시는 못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춤출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무대에서 가능한 오래오래 춤추고 싶은 목표 외엔 없다. 지금부터가 저의 새로운 전성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폭풍 같았던 몇 년을 보내서인지 표정에서는 안정감과 연륜이 묻어났다. 지난해 10월 결혼한 그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아내와 장인어른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게 된다”며 “‘지젤’에서 지젤이 죽은 뒤에도 자신을 배신한 알브레히트를 끝까지 감싸는데, 예전에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던 그럼 감정들이 지금은 절실히 다가온다”고 했다.

‘지젤’에서 파트너는 국립발레단의 간판 발레리나 김지영(37)이다. 김지영은 한국인 최초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다 2009년 복귀했다. 김현웅은 “발레는 젊음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자기 관리가 충실한 무용수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지영 누나와 호흡을 맞추면서 발레가 보기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은은한 향기까지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