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아직도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영문이력서엔 없는 몸무게·가족까지…

입력 2015-03-23 02:36

[친절한 쿡기자]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영화 속 유행어였던 이 말이 취업준비생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시기입니다. 봄바람과 함께 상반기 공개채용이 시작되자 취준생들의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대체 부모 직업이 왜 궁금한데?”

2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력서 비교체험’이라는 제목으로 사진 두 장이 올라왔습니다. 하나는 영문이력서(사진 아래 오른쪽), 하나는 전형적인 국문이력서(왼쪽)죠. 두 이력서는 한눈에 봐도 확연하게 다릅니다. 영문이력서에는 일단 사진을 붙이는 곳이 없습니다. 적어야 하는 항목도 간략합니다. 학력과 경력, 교내 활동, 전문 기술 등이죠.

그럼 국문이력서를 볼까요. 표로 일목요연하게 나뉘어 있는 국문이력서는 작성자에게 궁금한 게 참 많습니다. 고등학교부터 적어야 하는 학력란은 졸업을 했는지, 소재지는 어디인지, 전공은 무엇인지 꼼꼼히 답해야 합니다. 취미·특기, 종교는 물론 소개팅에서 물어보면 바로 차일 것 같은 질문도 가득합니다. 키는 얼마죠? 몸무게는요? 앞은 잘 보이나요?

거짓말 살짝 보탠 ‘신체사항’을 적고 나면 ‘가족사항’의 관문이 기다립니다. 가족들의 이름, 나이, 최종학력, 직업, 동거 여부까지. 주민등록번호만 없을 뿐이지 동사무소에서 떼는 증명서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아야 합니다. 고졸인 부모를 대졸로 적거나, 이혼한 어머니를 ‘동거’라고 표시하는 건 몸무게를 줄이는 것만큼 쉽지 않습니다. 가족사항이 서류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도 ‘그럼 왜 적으라고 하는 거야?’라고 되묻게 되죠. 이쯤 되면 경력란을 쓰기도 전에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합니다.

영문·국문 이력서 비교는 별다른 내용 없이 사진만 첨부됐는데도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엄마 아빠 최종학력, 출신학교가 왜 궁금한지 모르겠다”는 공감이 주를 이뤘죠. 한 네티즌은 “이력서 쓸 때 수치심을 느끼는 건 저뿐인가요”라고 씁쓸한 댓글을 달았습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기업이 블라인드 채용, 상시채용, 합숙평가 등 다양한 채용방식을 도입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전형과정을 바꾸는 건 결국 회사를 위한 변화죠. 이력서 양식의 문제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꾸준히 지적됐습니다.

취준생들이 기업에 묻고 있습니다. 관행을 핑계로 가장 필요한 변화에는 눈 감고 있지 않나요? 박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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