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개발원조(ODA)는 개발도상국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선진국들이 돈이나 기술력 등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자기 먹고 살기 바쁜 국가의 경우 ODA 지원 규모를 줄이는 게 맞는다. 그러나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프랑스 영국 등 서방국가들은 우방국인 미국을 등지면서까지 중국 주도의 다자개발은행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가입비 격인 출자금을 더 내려고 경쟁까지 하고 있다.
이는 ODA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퍼주기’ 사업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겉으로는 선진국들이 힘을 합쳐 후진국의 경제발전을 돕겠다는 것이지만, 그 이면엔 개발 여지가 많은 국가에 미리 진출해 잠재적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원조’라기보다는 ‘투자’에 가까운 셈이다.
단지 가난한 국가가 아니라 자원이 많고 개발 가능성이 높은 국가에 ODA 지원이 쏠린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은행(IBRD)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115달러 정도로 세계적으로 가장 못사는 남아시아는 ODA 지원을 1인당 9.37달러(2009년 기준) 정도 받았지만 GNI가 3660달러를 넘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은 ODA 지원을 1인당 41.73달러 받았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23일 “이러한 원조의 배분은 빈곤 감소라는 명제와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원조가 개도국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차원에서 이뤄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최빈국보다는 천연자원을 지니고 있는 중간 소득국에 선진국들이 더 많은 원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인구가 많아 잠재적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중남미나 동남아 지역으로 국제 ODA가 몰리는 추세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2020년까지 아시아 지역 인프라 건설 수요는 8000억 달러(약 900조원)에 달한다. IBRD, ADB 등 주요 국제개발은행의 조달시장 규모는 연간 500억 달러(약 55조원)에 이른다. 국제개발은행들은 저리에 장기차관 형식으로 개도국에 돈을 빌려주고, 개도국은 이 자금으로 도로, 항만 등 인프라를 건설한다. 개도국 기업들은 이 사업을 추진할 능력이 안 된다. 국제 입찰이 붙으면 미국, 일본 등 국제개발은행의 주요 주주국가의 기업들이 이를 독식하는 행태를 보인다. 쉽게 말해 ‘돈을 줬다가(장기차관) 다시 걷어가는(입찰 수주)’ 것이다. 우리나라 건설사들도 앞다퉈 국제수주전에 뛰어들고 있지만 실적은 좋지 못하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의 국제개발은행 조달시장 수주액은 전체 수주액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경쟁 입찰이라 하지만 사실상 뒤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ODA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를 놓친 서구 선진국들이 원조라는 이름으로 옛 식민지 국가를 경제적으로 예속하려 한 역사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세계은행의 원조를 받고 이들의 정책지도를 충실히 따른 개도국 중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면서 “이는 ODA가 개도국 중심이 아니라 선진국들이 경제적·외교적 실리를 추구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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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이슈] ODA의 이면… 후진국 ‘퍼주기’ 아닌 미래 시장 ‘투자’
입력 2015-03-24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