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은행(IBRD)에 가입한 지 60년째 되는 올해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원년이 될 전망이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의 전환(1987년), 선진 공여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2009년)에 이어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역사상 세 번째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 ODA 정책은 지난 60년 동안 서구식 방식에 충실했지만, AIIB 가입을 계기로 중국식 ODA 방식과의 접목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23일 “경제적 이득 등 국익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가입을 미룰 상황은 아니다”라며 “이번 주 중 AIIB 가입을 최종적으로 확정,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시작된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의 ODA 사업은 ‘맏형’ 격인 IBRD를 중심으로 아시아개발은행(ADB), 중남미개발은행(IBD) 등 미국 주도의 국제개발은행이 주축이 돼 진행돼 왔다. 우리나라 역시 이들 기관의 원조에 힘입어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지금은 이들 기관에 자금을 대는 주요 출자국으로 이름이 올라가있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가 IBRD에 가입한 지 60년째 되는 해다. IBRD는 지난해 송도에 서울사무소를 개소했고 오는 6월에는 IBRD ‘한국주간’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에는 IDRD의 도움을 받는 수십여명의 개도국 대표들도 초청된다. 이는 단순한 세리머니가 아니라 향후 IBRD가 각 개도국에서 실시하는 각종 인프라 사업에 한국 기업들의 참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IBRD의 속내도 담겨져 있다.
수십년 간 지속돼 온 미국 주도의 국제 ODA 시장의 틀을 깨겠다고 나선 것이 중국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3년 10월 동남아시아 순방 때 처음으로 AIIB 창립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2년 여 간의 준비를 거쳐 연내 AIIB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지난 1년 간 미국과의 의리와 경제적 실익을 놓고 고민에 빠져있던 한국은 최근 AIIB에 가입하는 쪽으로 최종 결론을 냈다. 국제 ODA 시장의 새로운 강자인 중국이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거부할 경우 AIIB가 주도하는 아시아 개도국 인프라 개발사업에서 한국 기업이 설 자리는 없어질 수밖에 없다.
AIIB 가입으로 우리 ODA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AIIB 운영은 중국식 ODA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고, 우리도 이에 보폭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로 불리는 중국의 ODA 원칙은 서구 중심의 ‘워싱턴 컨센서스’와 대척점에 있다. 민주주의나 인권 등 경제 외적인 조건을 토대로 ODA 공여 여부를 결정짓는 서구 방식과 달리 중국은 수원국의 내정 불간섭을 원칙으로 한다. 자원 확보라는 경제적 이익 추구를 숨기지 않는 것도 중국식 ODA의 한 특징이다. 정부 관계자는 “AIIB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서구나라들의 우려에 중국 측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며 “우리도 AIIB 가입으로 싫든 좋든 중국식 ODA 방식을 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월드 이슈] ‘돕는 나라’ 대한민국, 中과 보폭 맞춘다… AIIB 가입 결론, 공적원조 세 번째 변곡점
입력 2015-03-24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