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실업과 저출산 미스터리

입력 2015-03-23 02:43

“기계공학과는 뭐하는 데야?”

“기계 만드는 거 가르치는 데겠지.”

“무슨 기계 만드는데?”

“자동차랑 비행기랑….”

“냉장고랑 에어컨은 기계가 아닌 거야?”

“음… 그건 가전제품이니까… 그러니까… 그게… 반도체?”

아이와 이런 ‘고급스러운’ 대화를 주고받기 전까지 청년실업의 공포가 중학교 교실에까지 밀려와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2월 청년실업률이 16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던가. 2013년을 기준으로 인문계 대학생 절반, 지방대의 경우 10명 중 7명이 졸업 후 직장을 찾지 못했다. 취업에 성공해도 둘 중 하나는 계약직이다. 공대 취업률은 70%를 넘는 데다 다수가 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임금은 잘 쳐줘봐야 정규직의 60% 안팎에 불과하다. 고용불안은 말할 것도 없다. ‘인문대 대신 공대’는 자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니 자녀가 아무리 ‘수포자’래도 “공대라니 수학 싫어하지 않아?” 이런 말은 삼키는 게 옳다.

아이의 극적 변심은 학교교육의 힘이었다. “국문과 같은 데 가면 취업 안 된대.” 교단에서 무한 반복된 문과생 취업난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타고난 문과생’이던 아이는 공대 진학을 꿈꾸고, 느닷없이 미래 공대생의 엄마가 된 나는 냉장고가 기계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게 된 거다.

누구는 대입이란 최종 관문이 초·중·고교 교육제도를 짓누르고 있다고 한탄한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를 누르는 최대 압력은 취업이다. 과거 승패를 가르는 결승점이 대입이었다면 이제 승부는 4년 뒤로 미뤄졌다. 고비가 고3이라고? 천만의 말씀. 절정기는 고3이 아니라 대학 4학년, 압력의 지속기간도 12년에서 16년으로 늘어났다. 토익학원비 등 치러야 할 비용도 따라 증가했다. 부모가 쥐어준 실탄을 쥐고 아이들은 한 학기, 한 학년씩 취준생, 알바생, 계약직, 정규직을 가르는 장애물을 건너게 될 터였다. 사교육은, 정녕 중산층이 자녀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다.

학생은 많고 대학 문은 좁았던 과거 세대에 ‘대입 4당5락’은 부동의 진리였다. 그때 그랬듯 이제 자녀 세대가 좋은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3차 대전도 운명일까. 저성장기 일자리 사정이 나빠진다는 건 일종의 ‘법칙’이므로 실업은 미래 청년세대와 함께 가는 동반자인가.

경제학자들이 입 모아 “그렇다”고 설득해도, 미래 세대 앞에 닥친 일자리 공포가 내겐 여전히 미스터리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1명에 불과하다. 온 나라가 저출산에 골머리를 앓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갖가지 묘책을 쏟아냈다. 전문가들 중에는 저출산 고령화를 우리 사회 최대 리스크로 꼽는 이들까지 있다. 저출산을 걱정하는 데는 심지어 좌우도 없다.

따져보자. 저출산이 문제인 건 노동력 부족 때문이다. 근데 미래 세대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고실업이 운명이란다. 만약 고실업이 싫다면 다른 길이 있긴 하다. 일자리를 늘리되(그것도 노동 유연성을 위해 비정규직으로) 대신 저임금을 감내해야 한다. 초저출산 시대와 청년실업·저임금·고용불안.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에 안착하는 소수 승자를 위해 수십만명의 또래가 산업예비군을 형성한 채 임금을 끌어내리는 구조. 당신에게는 이런 짝짓기가 논리적으로 보이는가.

원흉은 어느 경제학자의 지적처럼 수익을 움켜쥔 채 납품단가도, 임금도, 투자도 늘리지 못하겠다는 제조업 대기업인지 모르겠다(‘한국 자본주의’). 그 말이 맞는다면 재벌이 다시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다. 이영미 종합편집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