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의원으로서 박근혜정부에 몸담고 있는 국무총리와 장관 등 6명 가운데 내년 20대 총선(4월 13일)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는 아직 없다. 오히려 “정치가 본업”이라며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들이 차기 총선에 나서려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내년 1월 14일까지 물러나야 한다. 내년 초, 이르면 올 연말에 개각이 예상된다는 뜻이다. 폭도 작지 않다. 각료 18명 중 3분의 1이다. 특히 총리와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도 대상이다. 여기에 정치인 출신이 아닌 일부 장관들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할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10개월짜리 ‘시한부 내각’을 택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문창극·안대희 두 총리 후보자의 잇단 중도사퇴 때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적이 없는 정치인들을 발탁했을 소지가 있고, 새누리당과의 소통 강화를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아울러 ‘선거가 없어 국정개혁의 골든타임’인 올해 내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아는 ‘친박’ 정치인들을 행정부에 포진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도 했을 법하다.
그러나 부작용이 우려되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시한부 장관들’이 오히려 국정과제의 힘 있는 추진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있다.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제대로 밀고 나아가기 위해선 공무원들이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는 게 필수적이다. 한데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장관도 하고, 박근혜정부 임기 말로 치달을 즈음이면 다시 4년을 보장받는 의원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말발이 공무원들에게 과연 통하겠는가. 희생은커녕 온갖 특혜를 다 누리면서 공무원들에게 멸사봉공을 외쳐봤자 먹혀들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16일 취임한 유기준 해양수산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우 부처를 장악하는 일도 버거울지 모른다.
이완구 총리가 돌파구를 마련할 때가 됐다. 그의 책무는 막중하다. 박근혜정부 집권 3년차 행정부 전반에 국정 추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취임하기까지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사전검증 단계에서 숱한 의혹에 휩싸였고, 언론관도 비난을 받았다. ‘반쪽 총리’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부패와의 전쟁, 4대 개혁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란 얘기다. 다른 ‘시한부 장관들’의 불출마 선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총리 스스로 총리직을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더욱이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하는 만큼 새누리당 당적을 오래 유지하기 힘든 상태다. 과감하게 금배지를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다음 총선을 앞두고 내년 초에 조성될 ‘청문회 정국’은 정부·여당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이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될 공산이 크다. 의외의 돌발 변수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의원 겸직 장관들은 차기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로 들어가는 게 박 대통령을 위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자위할 때가 아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 눈에는 국정 챙기기보다 금배지에 연연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열흘 전쯤 소위 ‘이완구법’이 발의됐다. 총리나 국무위원을 겸하는 의원들의 경우 국회 본회의 표결이 금지되고, 상임위원직에서 사임해야 한다는 것 등이 골자다. 아예 겸직을 금지한 미국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진 내용이다. 하지만 이 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회의적이다. 의원들이 의원-장관 겸직의 모순을 알면서도 눈감아온 지가 40년을 훌쩍 넘었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김진홍 칼럼] 총리부터 금배지 내려놓기를
입력 2015-03-23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