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재찬] ‘꽃밭에서’

입력 2015-03-23 02:10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마다 갓 입학한 꼬마들의 동요 배우는 소리가 정겨운 3월이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영어 섞인 유행가를 접하다가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같은 노랫말이 귓가에 스치면 잠시나마 평온한 마음이 깃든다. 순수한 노랫말에 단조로운 멜로디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것 같다.

2년 전쯤 서울 서빙고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했더니 폭력을 경험한 학생이 10%에 달했다. 그 후 학교 측은 1년 동안 매일 학생들에게 동요를 부르게 한 다음 이듬해 같은 조사를 실시해보니 폭력 경험자가 4분의 1 수준인 2.7%로 떨어졌다고 한다. 동요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가다듬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방증 아닐까.

‘동요계의 거목’인 동요작곡가 권길상씨가 얼마 전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산토끼’ ‘과꽃’ ‘모래성’ ‘둥근달’ 등 200곡 넘는 곡을 썼다. 그 가운데 ‘꽃밭에서’를 빼놓을 수 없다. 6·25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란 갔던 권씨가 월간잡지 ‘소년세계’에 실린 아동문학가 어효선의 시 ‘꽃밭에서’를 우연히 읽은 뒤 곡을 붙였다. 그는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전쟁으로 풀이 죽은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곡을 썼다”고 했다.

이 곡이 세상에 나온 1953년만 해도 전쟁터에서 전사하거나 행방불명으로 소식이 끊긴 ‘아버지’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던 때다. 노래 가사에도 꽃밭을 만들어 주던 아버지가 전쟁터로 집을 떠난 정황과 아직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애잔한 마음이 드러난다. 8분의 6박자 내림마장조의 서정적인 선율은 가사와 퍽 잘 어울린다.

권씨는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드노스 처치에서 치러진 장례식을 끝으로 영면에 들어갔다. 그는 떠났지만 60년 넘게 사랑을 받아온 ‘국민동요’는 계속 불릴 것이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박재찬 차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