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업체 판매원 김모(23)씨는 온라인 공간에서 10대 소녀로 행세했다. 카카오스토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해 9∼15세 여학생들을 찾아 다녔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성(性)에 눈을 떠가는 아이들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다. “나도 너랑 같은 나이야. 친해지고 싶어.” 소녀들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다. 김씨는 그런 아이들을 카카오톡, 라인 등 모바일 메신저로 유인했다. “우리끼리” 좀 더 깊은 얘기를 나누자면서.
그는 사춘기 여학생이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는 점을 이용했다. “내 몸을 찍은 사진을 보내줄게. 너도 네 사진을 보여줘” 하며 사진 교환을 요구했다. 김씨가 보낸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았거나 이미 그에게 ‘당한’ 다른 여학생 사진이었다. 피해 학생들은 그런 사진을 보고 김씨가 또래 소녀라고 굳게 믿었다.
요구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가슴 등 민감한 부위를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 달라고 했다. 상대 여학생이 거부하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까지 네가 보낸 사진을 네 친구들에게 뿌리겠다”는 말에 아이들은 그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김씨가 이렇게 협박해 신체 사진을 받은 여학생은 300명이 넘는다.
범행은 점차 대담해졌다. 지난 1월 중학교 진학을 앞둔 여학생에게 “중학교에 가서 일진들과 성관계를 맺지 않으면 왕따당한다. 미리 해봐야 한다”고 협박하며 성관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학생에겐 자신이 남자임을 노출한 상태였다. 겁먹은 학생이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면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결국 김씨는 지난 17일 인천의 다단계 판매업체 숙소에서 긴급 체포됐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김씨를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김씨는 과거에도 유사한 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전과가 있었다. “여학생 몇 명을 상대로 범행했느냐”는 경찰 추궁에 그는 “나도 정확한 수를 모른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몸매 사진 등을 SNS에 올린 여학생을 타깃으로 삼았다. 경찰은 김씨 컴퓨터와 휴대전화에서 여학생 노출 사진 수천장과 다수의 동영상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를 300명 이상으로 추정했다. 김씨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는 동영상도 있었다. 경찰은 “김씨가 노출 사진으로 협박해 여학생과 성관계를 맺었는지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자녀 SNS 관리 어떻게=청소년은 SNS를 자기만의 공간으로 여긴다. 부모가 강제로 “보여 달라”고 하기도 어렵다. 여성가족부 김성벽 청소년매체환경과장은 “결국 부모와 자녀의 대화 문제다. 억지로 개입하면 아이들은 더 숨어들어간다. SNS를 이용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부모와 상의토록 신뢰관계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또 SNS가 위험한 공간임을 꾸준히 인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녀와 충분한 대화를 거쳐 자녀의 SNS에 유해 단어가 등장하면 부모에게 문자로 알려주는 ‘스마트 안심드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SNS 미끼로 ‘인면수심 어른’… SNS서 또래 행세 초중생 유인, 노출 사진 받아 성관계 요구까지…
입력 2015-03-21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