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는 1900년 1월 14일 이탈리아 로마 코스탄치극장(지금의 로마오페라극장)에서 세계 초연됐다. 당시 무대세트와 의상, 소품 등은 115년이 지난 지금도 극장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이 초연 프로덕션은 2006년과 지난해 한국에서 재연됐다. 지난해 한국에서 공연된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극장의 ‘아이다’는 1963년 제작된 프로덕션을 아예 그대로 들여왔다.
해외의 오페라극장들은 예전 프로덕션들을 잘 보관하고 있다. 극장은 물론 자국 공연예술 역사의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페라는 한번 제작할 때 높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실패작이 아닌 경우에는 수십 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적인 불황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줄어들어 오페라극장들이 신작 제작을 줄이는 대신 예전 프로덕션을 레퍼토리로 활용하는 추세다.
이에 비해 창단된 지 53년이 된 한국의 국립오페라단은 가장 오래된 프로덕션이 2012년 10월 제작된 ‘카르멘’이다. 그 전에 만들어진 프로덕션들은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 모두 소각됐다. 국립오페라단은 현재 경기도 여주 무대미술센터와 용인 민간 물류회사 창고 2곳에 7개 작품의 무대세트와 의상 등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20일 “한국문예회관연합회가 운영하는 여주 무대미술센터의 경우 공간 자체가 워낙 좁은데다 항온, 항습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무대세트와 의상에 곰팡이가 피는 등 오래 보관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한예진 예술감독이 자격논란을 겪다가 한 달여 만에 사퇴한 이후 오페라계에서는 이참에 국립오페라단 인사 체계(본보 3월 16일자 참조)는 물론 운영 시스템에 대해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프로덕션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 문제는 물론 국립오페라단의 예술의전당 편입 문제, 전속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확보 등도 이번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페라 평론가 이용숙씨는 “한국 성악가들이 전 세계 오페라극장 무대를 누비고 있는데 비해 국내 오페라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면서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대표격인 국립오페라단부터 제대로 된 운영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국립오페라단의 예술의전당 편입과 관련, 오페라계는 국립오페라단에 전용극장은 필요하지만 정부가 2013년 발표했던 단순 편입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오페라 연출가인 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은 “새로 오페라 전용극장을 건설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립오페라단이 예술의전당에 편입되면 여러 면에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예술의전당 안에서 국립오페라단이 ‘국립답게’ 제대로 오페라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립오페라단의 발전을 위해 오페라계가 전용극장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전속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다. 영국 로열오페라나 미국의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 세계적인 오페라단은 전용극장 안에 각각 100명 이상의 단원으로 이뤄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함께 가지고 있다.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국립오페라단에서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면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려면 오페라를 전문으로 하는 전속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해외 오페라단이 연간 20∼25편 정도를 무대에 올리는 것과 비교해 국립오페라단은 6편에 불과하다. 또 국립오페라단이 작품 한 편당 4회 공연을 하는데 비해 외국에선 인기 레퍼토리의 경우 10회를 넘기기도 한다. 그래서 국립오페라단이 해외 단체처럼 전속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를 유지하기엔 공연 횟수가 너무 적어서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연간 9∼10편을 제작하는 일본 신국립극장 오페라단의 경우, 오케스트라는 한국처럼 전속 단체 없이 도쿄필, NHK필 등과 계약을 맺지만 합창단은 100명의 시즌제 단원을 두고 있다. 단원들은 연간 모든 오페라에 출연하는 40명과 합창인원이 많이 필요한 그랜드오페라에만 출연하는 60명으로 나눠 계약한다. 한국에서도 국립극단이 작업의 연속성과 제작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시즌제 단원을 도입했다.
오페라 평론가 손수현씨는 “국립오페라단이 구미처럼 전속합창단을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 신국립극장처럼 시즌제 단원을 도입해 합창의 질을 높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50년 前 ‘아이다’ 무대 보존한 라스칼라극장… 3년 넘은 무대 소각한 국립오페라단
입력 2015-03-23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