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전시만 보러 가니? 나는 봄 구경도 간다… 야외 풍경도 즐길 수 있는 전시를 찾아서

입력 2015-03-23 02:47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내 ‘뮤지엄 산’의 기획전 ‘하얀 울림-한지의 정서와 현대미술’에 출품된 권영우 작가의 한지 작품(‘무제’·2000). 항아리를 연상시키는 형상이 한지의 부드러움과 어울려 한국적 멋을 자아낸다. 아래 사진은 ‘뮤지엄 산’으로 가는 입구.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인 붉은색 조각 ‘아치 웨이’가 환영하듯 서 있다. 뮤지엄 산 제공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의 석파정 사랑채에 전시된 노벨로 피노티의 대리석 작품 ‘의식(Ritual).’ 소녀상이 바깥 풍경을 관조하는 듯해 동양적인 느낌을 준다.서울미술관 제공
5월이면 보랏빛 물결을 이룬다는 패랭이꽃은 아직은 누렇게 시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난 19일 찾은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의 산 중턱에 위치한 ‘뮤지엄 산(SAN·옛 한솔뮤지엄)’에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습관처럼 두르고 나온 겨울 머플러가 민망했다.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73)가 설계한 미술관으로 가기위해선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긴 돌담길을 걸어야 한다. 그 자체가 명상의 통과 의례이다. 플라워가든, 스톤가든 등 야외 곳곳에는 알렉산더 리버만, 헨리 무어 등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배치돼 있다.

미술관으로 봄마중을 가보는 건 어떨까. 우선 미술관 자체가 산을 끼고 있어 싸한 흙냄새를 맡으며 물 오른 나무의 연두빛 아우성을 들을 수 있는 곳이어야 제격이다. 물론 잘 짜여진 기획전은 기본이다.

‘뮤지엄 산’에서 20일 개관한 ‘하얀 울림-한지의 정서와 현대미술전’은 현대미술로서의 한지 40년사를 보는 듯하다. 창호지나 기름병을 싸던 종이, 혹은 서예의 바탕으로서만 존재해왔던 한지는 1980년대부터 현대적 조형 매체로 활발히 쓰이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사진작품에도 응용이 돼 한지의 무한변신을 엿볼 수 있다. 작가 40여명의 작품 100여점이 총집합했다. 단색화의 대가 박서보에서 젊은 사진작가 이정진까지 세대를 아우른다.

전시는 조형미를 보여주는 한지, 지지체(바탕)로 쓰인 한지, 섬유질로서의 물성을 보여주는 한지 등 세 갈래로 나눠 진행된다. 중장년에게는 한지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살았던 유년의 기억을 건드리는 전시가 될 것 같다.

‘뮤지엄 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5개 작품이다. 빛을 공간에 가둠으로써 명상의 공간을 연출하는 그의 작품은 어떤 설명으로도 형용하기 힘들다. 오감으로 경험하는 게 최고다. 입장료는 갤러리권(조각공원+미술관)이 1만5000원, 제임스 터렐관을 합친 뮤지엄권이 2만8000원이다. 미취학아동은 무료. 8월 30일까지(033-730-9022).

서울 안에서도 산을 낀 전시공간에 볼만한 기획전을 갖춘 전시를 찾을 수 있다. 인왕산 자락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의 별서였던 석파정을 끼고 있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서울미술관이다. 이 곳에선 이탈리아 ‘국민조각가’ 노벨로 피노티(76)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노벨로 피노티: 본 조르노’전. ‘본 조르노’는 이탈리아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그는 1966년과 1984년 두 차례 베니스비엔날레 이탈리아 대표 작가였고,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교황 요한 23세 납골당 조각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과는 2004년 부산비엔날레 초청작가로 인연을 맺어 을숙도 조각공원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출품된 38점은 대리석과 청동 등 고전적인 조각 재료를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과감한 생략과 마무리를 통해 구상과 추상을 절묘하게 섞으며, 특히 절단된 인체가 거의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2차대전 당시 수레를 타고 피난 가던 한 가족이 폭탄에 맞아 온몸이 산산조각난 걸 눈앞에서 봤다”며 전쟁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했다. 작품은 실내뿐 아니라 석파정 잔디공원 곳곳과 사랑채에도 배치돼 있다. 사랑채에는 소녀 두상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 ‘의식’을 앉혀 놓았다. 마치 손님으로 온 서양 소녀가 인왕산 자락의 풍경을 내다보며 명상하고 있는 듯하다. 5월 17일까지(02-395-0100).

원주·서울=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